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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nastery entrance in Egypt

    수도자 그리고 순교자

    앙겔로스 대주교 인터뷰

    - 피터 맘슨

    2020년 09월 30일 수요일

    다른 언어들: Deutsch, français, Eng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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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교자들이 우리에게 소명에 대해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런던 콥트 정교회 대주교 앙겔로스 대주교가 쟁기의 피터 맘슨과 오늘날 박해받는 교회에 관한 얘기를 나누었다.

    쟁기: 사도 바울은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라고 썼습니다(엡4:1).이 소명이란 무엇인가요?

    앙겔로스 대주교: 우리 모두는 ‘세상의 빛’과 ‘이 땅의 소금’이 되는 소명이 있습니다. 우리 공동체와 그리스도의 몸의 일원이 되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물을 주십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등장하는 종들이 자신이 받았던 것을 주인에게 주었던 것을 우리도 할 수 있게 말입니다. 하나님을 충실히 따르는 것이 소명입니다.

    물론 소명은 좀더 구체적으로는 기독교 사역의 부르심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주교나 사제, 집사가 될 수도 있고, 주일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 노숙자들을 먹이는 일이나 다른 종류의 봉사활동을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제가 그랬던 것처럼 수도사가 되는 소명도 있습니다. 제가 있던 수도원은 이집트의 사막에 있는 성 안토니에 의해 4세기에 설립되었으며, 콥트 정교회의 기둥 중 하나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헌신적인 남녀들이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세상을 위해 기도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과 하나되게 하라”는 부름에 순종하는 특별한 소명을 따르는 활기찬 수도원과 수녀원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교회의 다른 부분이나 세상을 저버리지 않습니다. 기도를 통해 교회와 세계를 섬기고 있는 겁니다. 반면에 우리 교구의 사제들은 결혼한 남자로 서품을 받고, 수도사와 주교들은 모두 독신입니다.

    주교님은 수도원에 사셨습니다. 어떻게 해서 그곳에 가셨나요?

    전 이집트에서 태어났습니다. 제가 다섯 살 때 우리 가족은 호주로 이민을 갔습니다. 그리고 청년이 되었을 때 저는 이집트로 돌아가 수도원의 일원이 되라는 강력한 소명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스물두 살 때인 1990년에 호주를 떠났고, 평생 정결과 가난, 순종을 맹세하며, 카이로와 알렉산드리아 중간 지점의 사막 고속도로에 있는 스케티스 계곡(아랍어로 와디 엘 나트룬)의 성 비쇼이 수도원에 합류했습니다. 이 수도원은 4세기에 설립되었으며 일부 건물은 실제로 그 당시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현재 약 250명의 수도사들이 살고 있고요.

    종교 공동체에 평생 서약을 하는 결정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는 급진적인 발걸음으로 여겨집니다. 왜 수도사가 되셨죠?

    하나님은 당신이 선택하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건 나중에 돌아볼 때 더 분명히 볼 수 있게 되는 건데요, 그때 저는 세상을 떠나 수도원으로 가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그때 호주에서 제가 속한 공동체에 깊이 관여하고 있었죠. 교회를 섬겼고, 학교에서 정치학과 철학을 공부한 다음 법학 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일을 병행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광야에서 기도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대부분의 수도사들은 평생 수도원에 남지만, 때로는 다른 곳으로 보내집니다. 아까 말씀 드렸듯이, 우리 교구 사제들은 보통 결혼한 남자로 서품을 받지만, 저처럼 예외도 있습니다. 수도원에서 얼마간 지낸 후, 저는 매우 작은 교구에서 수도사-사제로 섬기기 위해 영국으로 파견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저는 주교 서품을 받았고, 이제는 대주교로 섬기고 있습니다.

    콥트 수도원이 활기차다고 하셨는데요.

    우리는 금식하고, 기도합니다. 4세기에 비롯된 이런 금욕적인 전통은 지금도 우리가 누구인지를 규정하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수도원은 또한 신앙을 포기하라는 엄청난 압력의 한 가운데에서도 남성과 여성이 하나님께 의지하여 살아있는 교회를 찾아 갈 수 있는 피난처이기도 합니다.

    일부 비 정교회 역사학자들의 오해와 달리, 초기 수사들과 수녀들은 순교를 피하기 위해 사막으로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수도원 자체가 기독교 신앙을 이유로 수도사와 수녀들을 죽인 베르베르족의 공격 대상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수도원들은 꿋꿋이 그 박해를 이겨냈습니다.

    수도원은 기독교인들만을 위한 것도 아니고, 콥트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 적이 한번도 없었어요. 제가 사는 수도원에는 아치 꼭대기의 안전한 위치에서 수도원 정문을 내려다 볼 수 있는 덧문이 있습니다.

    이 덧문은 수도사들이 습격자들에게 음식과 물, 약을 내려줄 수 있도록 지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적 청지기 정신과 환대의 이상인 겁니다. 우리는 공동체를 돌보는 동시에 세상을 돌봐야 합니다. 심지어는 자신을 우리의 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조차도요.

    금욕주의는 평신도의 삶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주교님은 일년 중 약 3분의 2를 금식하고 매일 기도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삶의 박동과 주교님 교회의 많은 사람이 믿음을 위해 고통받고, 특히 순교라는 특정한 소명을 받아들이려는 의지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다고 보시나요?

    단식과 교회의 전례는 한 사람이 어떤 삶을 사는지 본질적으로 보여줍니다. 2015년 ISIS에 의해 21명의 순교자가 살해되었을 때처럼, 개인적인 기도 생활과 순교 같은 대중을 향한 증거는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거기서 우리는 교회의 아름다움을 보는 겁니다.

    어떤 사람들은 콥트 정교회가 구식이거나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매우 자연스럽게 자신의 믿음을 증거한 순교자들을 보면, 콥트 교회가 살아 있고, 그것이 특정한 방식으로 교회 구성원을 양육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들에게 정절은 떼어놓을 수 없는 중요한 것이 되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고통과 믿음을 저버리라는 압력을 극복할 은혜를 주십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이집트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 주실 수 있습니까?

    글쎄요... 지난 몇 년만 봐서는 설명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성 마가는 1세기 중반 이집트에서 그리스도에 관해 설교했습니다. 교회는 그 이후로 계속 존재해 왔고, 이런저런 박해를 당해 왔으며 그건 오늘도 여전합니다. 특히 2011년 무바라크 당시 대통령에 대한 항쟁 이후 법과 질서의 일시적 붕괴가 있었던 이른바 ‘아랍의 봄’ 이후 교회에 대한 박해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 이후로 우리는 기독교인들을 표적으로 삼는 폭력적인 이슬람 집단을 목격해 오고 있습니다. 지난 2년간 우리 교인들은 일부 지역의 신자 가정과 개인을 표적으로 지속적으로 자행된 폭탄 테러와 총격으로 어린이와 남녀 약 150명을 잃었습니다. 종려주일에는 알렉산드리아와 탄타에서 예배 중인 교회를 폭파하는 사건이 있었고, 교회를 나서는 신도들에게 가해진 총격 사건, 그리고 수도원으로 순례여행을 가는 버스의 순례자들을 총격한 사건이 최소한 두 번 있었습니다. 이 피해자 중에는 수도원에서 세례를 받고 돌아오던 한 대가족도 있었고요.

    이집트 콥트 기독교인들이 행하는 증거는 자신들이 다음 표적이라는 것을 알고도 계속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어떤 가족은 교회에 가기 전에 함께 기도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모두 되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피의 교회 연합’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콥트 교회의 박해로 인해 기독교 연합의 새로운 문이 어떻게 열렸나요?

    저는 방금 말씀하신 표현을 2013년 로마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으로부터 5세기 동안 우리를 분열시켰던 신학 문제를 해결하는 두 교회 사이의 그리스도교 협약 체결 40주년 기념식에서 처음 들었습니다.

    우리는 2015년 리비아 순교자 21명 중 한 명이 콥트 교인이 아니라 가나 사람이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지만 박해는 이상한 방법으로 우리를 하나로 묶습니다. 박해자들이 닥쳐올 때, 그들은 당신이 어떤 교파인지 묻지 않습니다. 단지 당신이 기독교 신자이기 때문에 당신을 죽일 뿐입니다. 우리는 박해자들이 정한 그 명칭을 공유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그 공통성을 확실히 인식해야 합니다.

    박해는 콥트 교인들에게만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최근에 우리는 스리랑카와 이라크에서 교회들이 폭파당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한 시리아와 나이지리아에서 기독교인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것을 자신의 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서로를 감싸 지키고, 서로의 고통과 기쁨을 나누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박해를 당했는데 편안하게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습니다. 그 피해자가 나와 함께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구성원이라면 더 그럴 겁니다.

    The Monastery of Saint Bishoy in Egypt

    이집트 와디 엘 나트룬 성 비쇼이 수도원
    사진: Paweł Filipczak.작가의 허락을 받고 사용.

    지난해, 대주교님과 제가 21명의 순교자들을 기념하기 위해 여러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제가 속한 아나뱁티스트 공동체인 브루더호프와 콥트 정교회는 같은 그리스도의 몸 안에 속했지만 신학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상당한 차이를 지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한몸이라는 것이 얼마나 분명한지 놀랍게 느껴졌습니다. 예를 들어, 아나뱁티스트 전통에서도,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전승하려는 강한 전통이 있습니다. 이것이 두 교회의 차이점을 없앨 수는 없지만, 확실히 올바른 관점으로 돌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신학적 차이를 결코 얼버무려서는 안 됩니다만, 이 말이 콥트 교회와 브루더호프가 지난 한 해 동안 해왔던 것처럼 함께 일하면서 어깨를 나란히 하지 않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는 박해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이보다는 덜 극적이면서도 여전히 우리 믿음을 위협할 압력이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의 자유로운 문화는 자율성을 강조합니다. 항상 선택의 여지를 남겨두라고 요구받지요. 이와는 대조적으로 제자도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부르심입니다. 그 부르심에 응할 수도 있고 거부할 수도 있지만, 그게 무엇인지 정의를 내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부르심을 받아들이고 그리스도께 충성을 다 할 때, 우리는 선택의 여지를 남겨 놓지 않습니다. 오늘날 제자로 살아가도록 부르심을 받아들이는 것이 이전 세기보다 더 어려운 것이 사실일까요?

    모든 시대에는 나름의 도전이 있습니다. 저는 돌아가신 저희 교황 세누다 3세께서 저를 영국으로 파송하시면서 하신 말씀을 잊지 못합니다. 과거의 문제는 사람들이 옳고 그름 사이에서 항상 그른 것을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반면에, 지금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모호합니다. 그것이 우리 아이들과 우리가 관심을 갖는 사람들에게 도전이 됩니다. 이제는 모든 것이 상대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어떤 사람들에게는 말 그대로 신성시 될 만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어릴 때부터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고, 지도하고, 우리 자신이 충실하고 위선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면, 우리의 믿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내 설교와 내 행동에서 그리스도의 메시지가 강하고 분명하게 유지된다면, 나는 여전히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 안에 있는 영은 여전히 그 메시지를 갈망할 것입니다.

    서구의 많은 기독교인들은 기독교가 문화의 테두리를 정했던 시대를 무척 그리워하는 것 같습니다. 서구 교회와는 달리 콥트 교회는 수세기 동안 소수 교파였어요. 콥트 교회의 경험은 서구 교회에 무엇을 가르칠 수 있을까요?

    이집트에는 이슬람교도보다 콥트계 기독교인이 적기 때문에 숫자적으로 볼 때 우리는 확실히 소수입니다만, 우리는 소수파로 분류되는 것을 거부합니다. 이집트뿐만 아니라 중동의 많은 기독교 공동체에서 우리 콥트 교인들은 오랫동안 토착해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습니다. 원주민이지요.

    90퍼센트 곱틱 교인들은 여전히 이집트에 살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시리아, 이라크, 리비아, 팔레스타인 지역의 기독교인들과는 아주 다른 상황입니다. 그곳의 대부분 기독교인들이 조국을 등져야 했죠.

    박해를 받으면 신앙 생활 방식이 바뀝니다. 사람들이 무관심해질 겨를이 적어서 그들의 증언은 더 실존적이고 더 강력합니다.

    Archbishop Angaelos with Bruderhof elder Paul Winter at an event commemorating the twenty-one Coptic martyrs.

    브루더호프 장로 폴 윈터와 앙겔로스 대주교(오른쪽). 2019년 2월 21명의 콥틱 순교자 추모 행사에서.
    사진: Melinda Goodwin/브루더호프

    당신은 주교이십니다. 그건 목자란 뜻인데요. 그런 부르심을 받았다는 건 무엇을 뜻합니까?

    소명이 항상 우선시됩니다. 제가 보살피는 사람들을 언제든지 최선을 다해 책임지겠다는 다짐이지요. 그것이 제 삶의 동력입니다.

    지난 30년 동안 제 우선순위는 항상 제가 섬겨온 사람들과의 관계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나를 의지하고 제게 위탁된 사람들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아버지처럼 사제나 주교가 직접 목회하려는 의식이 매우 강합니다. 그냥 아버지 같은 존재가 아니라 실제로 영적인 아버지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은퇴는 없고, 평생 사역을 한다는 뜻입니다. 제가 그러고 있는 것처럼 일단 서품을 받은 주교는 그 교구를 평생 섬깁니다.

    저는 런던에서 사제로 사역을 시작했기 때문에, 우리 신도들은 모두 저를 직접 대합니다. 제 사목팀이 다른 교단과의 연대와 지지 사역 등을 포함한 모든 외적인 업무를 처리하고, 저는 교회 안 목회 사역을 직접 다룹니다. 사람들은 제게 직접 전화를 하고, 저와 직접 상담 약속을 합니다. 아직도 집으로 심방도 가고 고해성사를 듣고 있어요. 제가 처음 왔을 때 세례를 주었던 분들의 자녀들에게 세례도 주고 있습니다. 그런 안정과 지속은 우리가 섬기는 이들에게 중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섬기도록 위탁받았으며, 우리가 그 소명에 충실한지 안 한지에 따라 차이가 생깁니다. 우리가 더 충실하게 목양을 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삶에서 그리스도를 정말로 따르고 그의 나라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소명, 부르심에 대해 이야기해 왔는데요. 자신들은 은사가 없다, 소명을 받지 못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떻게 그런 분들을 격려하시겠습니까?

    우선, 나는 그분들에게 당신들이 틀렸다고 말할 겁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은사가 주어졌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자비로우신 분이시니까요. 그분은 우리를 자녀로서 사랑하시고, 그럴 자격도 없는 우리에게 은사를 주셔서 그의 나라를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그 은사들을 볼 수 없다면, 우리가 주변 사람들에게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권한을 부여 받지 못했거나, 우리 스스로를 가치 없다고 느끼게 하는 사탄의 계략에 굴복하여 무기력해진 것은 아닌지 살펴야 합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무언가 기여할 것이 있지만, 때로는 자기 눈으로 그걸 알아 볼 수가 없습니다. 어디에 투자를 하고 싶다면 보통 투자 자문을 구하지 않나요? 건강해지고 싶다면, 우리는 체력 단련 강사를 찾고요. 마찬가지로 영성에 관해서는 우리를 제자도로 인도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이 사람들은 우리 소명이 무엇인지, 우리 은사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들을 잘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줄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우리가 그것들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거나 적절하게 사용하지 않으면 우리를 타이를 사람들입니다. 우리 가족, 충실한 친구, 영적 지도자, 성직자들이 우리를 정말 도우려 할 겁니다.

    과부의 동전 두 닢이나 어린 소년의 빵 다섯 덩이와 두 마리 물고기같이 우리는 늘 기여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그 소명에 대답하고 그 은사를 사용할 책임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비록 그것들이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고 해도, 그것은 거짓된 눈가림이며, 하나님은 그들에게 내려주는 축복으로 훨씬 더 많은 일을 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이 인터뷰는 2019년 7월 31일에 이루어졌다.

    The Monastery of Saint Bishoy in Egypt

    4세기에 설립된 성 비쇼이 수도원에는 현재 250명의 수도승들 이 살고 있다. 사진 Paweł Filipczak. 작가의 허락을 받고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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