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몬 가족이 주일 저녁식탁에서 절대 입 밖에 내지 않는 중요한 이야기 중에 당혹스런 내 아버지 얘기도 있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물었다. “‘네 아버지 어디 계시니?’라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해요?”

이것이 어머니의 가장 자세한 대답이었다. “그냥 네 아버지는 여기 살지 않는다고 하거라.” 다행이었다. 내게도 아버지가 있었다. 나는 기억을 더듬어 파편들을 찾아냈다. 어떤 남자의 무릎에 올라가 그가 파이프에 담배를 채우던 모습을 지켜보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 남자가 수염을 긁던 장면도 떠올랐다. 담뱃대를 든 남자를 따라 스켈톤 씨 가게에 갔던 일도 떠올랐다. 그 남자는 냉장고에서 차갑고 ‘시커먼 물’ 한 병을 꺼내 내게 건네주었다. 그때 누군가 그에게 물었다. “밥, 손자한테 코카콜라 사 주려고?”

내게 음료수를 건넨 남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닥쳐. 내 아들이라고!”

그게 전부였다.

거실 선반에 담배상자와 파이프가 있었다. “저거 아빠 거예요?” 내가 물었다.

“그래.” 내가 들은 대답은 이게 전부였다. 호박색 담배통에 코를 박고 킁킁거리는 게 아버지의 존재를 감각으로 확인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어느 날, 혼자, 열지 말아야 할 서랍을 뒤지다가 애틀랜타의 어느 교도소 소장이 보낸 편지를 발견했다. “관계자에게: 로버트 C. 윌리몬의 수형생활은 모범적입니다.” 나는 전과자 아버지의 성공에 어떻게 부합할 것인가?

나는 휴스 중학교 학생회장이었다. 그래서 어느 날 밤, 학부모 모임에서 발표를 했다. <그린빌 뉴스> 편집자가 나중에 다가와 말했다. “윌리몬 집안의 말재주를 물려받았구나! 그런데 아빠가 누구니? 찰스, 아니면 진?”

나는 침을 삼키며 대답했다. “제 아버지는 로버트예요.”

“농담이겠지? 밥(로버트의 별칭)에게 너같이 어린 아들이 있다는 얘긴 못 들었는데.”

티모시 존스, 별난 스튜디오, 디테일

그는 허리를 숙이며 속삭였다. “밥은 목사를 꼬드겨 십계명이라도 범하게 할 수 있는 위인이지. 그 잡놈이 나를 꼬드겨 만 달러를 뜯어냈다고. 그리곤 이 동네를 떴지. 한 푼도 돌려주지 않았어.”또 하나의 직업이, 은행업이 내게 영원히 닫혔다.

“그래도 너한테 해 줄 얘기가 있다.” 그가 말을 이었다. “네 애비가 저 문으로 들어와 ‘빌, 만 달러만 투자하게. 자네를 부자로 만들어 줄 멋진 계획이 있네!’라고 한다면, 난 수표책을 꺼낼 거야. 세상에, 그 사람, 말 하나는 끝내줬거든!”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사 6:8-9).

감리교인들은 이 구절을 끔찍이 좋아했다. 1981년 예수회 소속 댄 슈트(Dane Shutte)가 썼고 이른바 감리교의 국가가 된 “주님, 내가 여기 있습니다”(Here I Am, Lord)라는 찬송이 이 구절에서 나왔다. 감리교인들은 대부분 이 찬송을 2절까지 다 부르기도 전에 줄루족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겠다고 자원하거나 적어도 감상적인 눈물을 흘린다. 이 찬송의 후렴 부분은 이렇다. “주님, 내가 여기 있습니다. 주님, 저를 찾지 않으셨나요? 제가 밤에 당신의 부르심을 들었습니다. 주님, 주님이 저를 인도하시면 제가 가겠습니다… 제가….”

주목하라. 1인칭 대명사가 압도적이며, 그래서 소명이 자원으로 전락한다. 과연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이 이 달달한 곡조에 휩쓸려 이 찬송을 부르면서 자신을 부르시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나는지 의문이다.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이 지나치게 고양된 우리의 주관적 느낌을 바로잡는 도움을 실제로 받아들이려 하겠는가?

지금처럼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렇게 손쉽게 얻는 자유를 누리면서도 삶이란 살만하다는 생각을 지금처럼 거의 하지 못하는 때가 없었다.

소명(vocation), 하나님께 부름을 받음이란 더는 좀체 사용되지 않는 용어다. 헤르만 헤세는 이렇게 말했다. “소명은 영을 깨운다… 그래서 내부로부터 오는 꿈과 예감 대신, 부르심이 외부로부터 오며,” 외부의 관계가 “나타나 자신을 드러낸다.”  우리는 우리의 삶이란 자신의 선택대로 사용할 수 있는 자신만의 소유라는 허구를 믿도록 교육받았고, 그래서 부르심은 선택하는 게 아니라(unchosen calling)는 개념이 이상해 보인다.

“나는 누구인가?” 또는 “나는 왜 여기 있는가?” 이 질문은 널리 알려진 개인주의 신조를 한결같이 불러일으킨다. 나는 내가 만들었고, 자율적이며, 나의 소유이며, 나의 빈틈없는 선택 및 나보다 중요한 그 누구와도 무관한 나의 영웅적 행동의 총합이라는 것이다. 나는 내가 자유롭게 동의한 것 외에 그 어떤 주장에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내 운명의 선장이며, 내 영혼의 주인이고, 내 이야기의 저자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삶이 우리를 배치하시는 하나님보다 재미없다는 비미국적 확신을 내세운다. 아퀴나스의 말을 조금 바꾸어 표현하자면, 우리는 부수적 피조물이다. 우리는 해가 아니라 달이다. 우리의 빛은 파생적이며, 세상의 빛을 받아서 되비춘다. 흙에 생명을 불어넣는 놀라운 생각을 하신 하나님이(창 2:7) 호흡을, 자신이 뜻하시는 시간만큼만 빌려주신다.

온갖 거짓말이 우리의 부수성(contingency)과 의존성(dependency)이란 진리를 알지 못하도록 가로막는다. 자기 창조(self-invention)의 신화가 우리에게 50가지 피자를 팔고 400개 TV 채널을 제공하는 시장을 인수하고, 그 결과로 생겨난 황무지를 “자유”라 부른다. 지금처럼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렇게 손쉽게 얻는 자유를 누리면서도 삶이란 살만하다는 생각을 지금처럼 거의 하지 못하고 스스로 좋은 삶을 선택하지도 못하는 때가 없었다.

어거스틴은 우리 인간이 자랑하는 프로메테우스적 선택의 자유라는 것이 한갓 달가닥거리는 우리의 사슬, 곧 우리의 주인을 정직하게 인정하지 못하는 것뿐이라고 했다. 이 욕망의 시장에서, 우리의 운명은 끝이 없고 절대로 만족을 모르는 소비다. 나는 자신에게 말한다. 내가 가장 고압적인 주인 곧 나 자신의 노예임을 인정하지 못하더라도 내게 외부의 주인은 없다고.

현대는 우리가 누구인지 정의하는 이야기를 쓰라고, 가능한 다양한 줄거리 가운데 하나를 영웅적으로 선택해 쓰라고 우리를 다그친다. 반대로, 그리스도인들은 우리를 정의하는 중요한 것들은 대부분 우연적이며(accidental) 외부에서 부가된다고 믿는다. 문제는 “내가 나를 가지고 어떻게 하길 원하는가?”가 아니라 “내가 어느 하나님을 예배하며 그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다루고 계시느냐?”이다.

이제 나를 발견하신 하나님을 내가 발견한 이야기를 하겠다.

대학 2학년 때 유럽으로 꿈의 여행이란 걸 떠났다(계획은 24시간 내내 흥청망청 퍼마시며 세 달을 보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 여행을 낚아채 코미디 같은 소명극을 만드셨다. 1966년 한 여름 즈음, 우리는 하늘색 폭스바겐 비틀(나치가 볼프스부르크에 세운 공장에서 구매했다)을 타고 암스테르담에 도착했다. 친구들이 죄를 모르는 암스테르담을 돌아보는 동안, 나는 레이크스 국립미술관을 찾아가 전에 콘스탄스 아미티즈의 미술사 101에서 슬라이드로만 봤던 그림들 앞에 섰다. 우수에 찬 렘브란트의 초상화 앞에서 생각에 잠겼다가 그림이 너무 생생해 고개를 돌려야 했다. 오른쪽에서 나이 든 남자가 반 로이스달의 작품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왠지 낯이 익었다. 하지만 멀고 낯선 땅에서 내가 아는 사람이 있겠는가?

마니 박사였다! 회색 수염을 한 주 정도 안 깎은 상태였으나 틀림없었다. 칼라일 마니(Carlyle Marney, 1916-1987, 침례교 목사이자 교수)였다. 6개월 전, 마니(그는 이렇게 불리길 더 좋아했다)는 와포드 칼리지의 연례 종교주간에 강사로 왔다. 그는 하나님이 낼 법한 굵은 목소리로, 마치 야웨가 테네시 출신의 침례교인이신 것처럼 설교했다. 그는 설교 중에도 육두문자를 썼고, 조금 지나친 말들을 던져 나 같은 2학년들을 열광시켰다. 그가 했던 설교들의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풀밭에서 놀다가 그가 휘파람을 불면 머리를 돌렸다는 그의 말 이야기는 기억난다. 하나님에 대한 이해할 수 없는 은유였던가?

나는 머뭇거리며 다가가 물었다. “마니 박사님 아니세요?”

“자넨 대체 누군가?” 그는 나를 위아래로 빤히 훑어보며 되물었다.

나는 이게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지난봄 와포드에 오셔서 설교하셨죠? 그 학교 학생입니다.”

마니는 그 자리에 선 채 나를 감정했다.

“유럽에는 설교하러 오셨습니까?” 내가 물었다.

“유대인을 되찾으러 왔네.” 그가 손가락으로 내 가슴을 누르며 말했다. “닷새 동안 회당 여덟 곳을 둘러본다네. 내 깨끗한 그리스도인의 코를 할례받은 자들의 재에 부비며 말일세.”

매우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자네는? 왜 여기 왔는가?” 그가 물었다.

“저요? 그냥 친구들하고 유럽을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여자나 꾀서 재미나게 놀려고요.”

“자네, 나를 바보로 아나? 내가 목사 짬밥이 얼만지나 아는가? 이제 누구라도 거짓말을 하면 단박에 알 정도는 됐다네.”

“그러시군요. 그럼 제가 왜 여기 왔는지 통 모르겠습니다.” 내가 더듬대며 말했다.

“좋아! 자네 뭔가 좀 터득한 거 같네. 우나무노(Unamuno, 1864-1936, 스페인 철학자, 시인)가 그랬지.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게 앎의 시작이라고. 도와줄까?”

그가 내 팔을 움켜잡았다. “이곳 네덜란드 사람들이 내가 한 나절에 다 받아들일 수 없는 진리를 일러주었다네. 그래서 난 한 잔 해야겠는데, 자네는 어떤가?”

마니 박사는 나를 이끌고 계단을 내려가 정문으로 나가더니 미술관 밖에 자리한 첫째 술집으로 들어갔다.

“여기, 버번 좀 주게!” 그가 어둑하고 담배연기 자욱한 바 너머에 서 있는 웨이터에게 말했다. “굳이 좋은 버번은 필요 없네. 이 친구는 그 차이를 모르고, 난 이렇게 먼 곳에서 그리 좋은 위스키를 기대하지 않네. 스트레이트로 두 잔 주게.”

나는 마니 교수가 담배 파이프를 만지작거리는 모습을 지켜보며 흥분했다. 나는 결국 위험한 곳에 끌려와 있었다.

그가 첫 잔을 비운 후 말했다. “이제 술도 좀 들어갔겠다, 얘기할 준비는 됐겠지? 허튼소리는 집어치우고, 누가 자네를 여기 데려왔는가? 자네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이유가 뭔가?”

교수는 달콤한 냄새가 나는 담배를 파이프에 밀어 넣기 시작했다.

“음, 그냥 유럽 구경하러 왔습니다. 유럽은 처음입니다. 미술사를 정말 좋아하거든요….”

“이건 자네가 시작한 걸세. 그리고 내가 아브라함과 한판 하려 할 때 자네가 불쑥 밀고 들어온 걸세.” 마니 박사가 비난하듯 중얼거리더니 의자 깊숙이 몸을 밀어 넣고 마치 쓸데없는 얘기만 들었다는 듯 눈을 감았다.

“교수님이 와포드에서 설교하실 때 저는 생각하게 됐습니다. 아니, 그동안 생각했던 것들을 비로서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신학교를 시험 삼아 1년을 다녀보도록 록펠러 재단에서 주는 장학금을 신청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거나 이것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이죠. 하지만….”

마니 박사는 마치 마침내 나를 이해했다는 듯 싱긋 웃었다. “이보게, 인생이란 독백이 아니라 대화일세.” 나는 공부하지 않은 시험문제를 받아든 것처럼 정신이 깜깜해졌다.

“제가 신학교를 생각했었다는 게 정말 불편해요. 미친 짓 같습니다.” 내가 초조하게 말했다.

“왜 미친 짓이지?” 마니 박사가 바 건너편을 응시하고 무관심한 척 파이프 담배를 피우며 물었다.

나는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저는 아버지 없이 자랐습니다. 아버지가 저희를 떠났죠. 제가…”

마니 박사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만하게. 자네 아버지는 도망쳤을 수도, 죽었을 수도, 의절했을 수도 있네. 하지만 누구에게나 이런 저런 아버지가 있지. 자네는 나가 다른 아버지를 찾았을 텐데, 그렇지 않은가? 게다가, 자네가 아버지 없이 자랐다는 게 여기 온 이유가 되겠는가?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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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이에 테이블이 있는 게 고마웠다. 나는 불쑥 내뱉었다. “저는 대학 시절부터 줄곧 프로이드를 읽었고, ‘어쩌면 내가 하나님에 꽂힌 게 아버지 없이 자란 것에 대한 보상일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희망 사항이 이뤄진 거죠.”

“아마도.” 마니 박사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하나님에 대한 제 생각은 교도소의 아버지에 대한 심리적 반발일 뿐입니다.”

“이보게.” 마니 박사가 담배 파이프를 옆에 내려놓고 테이블 건너편에 앉은 내게 바투 다가오며 마치 나를 붙잡고 분명한 것을 설명해야 하는 것처럼 말했다. “이보게, 하나님은 손에 잡히면 어느 핸들이든 사용하실 걸세.”

너무 오래 침묵이 흘렀다. 드디어 내가 물었다. “하지만 하나님이 난장판이 되어버린 제 배경을 어떻게 사용하실지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마니 박사는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이보게, 하나님은 그 어떤 배배 꼬인 배경도, 비뚤어진 아버지도, 영악한 어머니도 사용하실 걸세. 제발 성경 좀 읽게! 맹세컨대, 내가 아는 한 한 푼어치라도 가치 있는 목사치고 골치 아픈 어머니나 아버지 문제가 없었던 사람은 하나도 없다네. 하나님은 어느 쪽이든 사용하실 수 있네. 축하하네. 그래도 자네는 한 쪽만 문제이지 않은가 말일세. 하나님이 자네를 사용하실 걸세.”

“그럼. 확신컨대, 하나님이 자네 이름을 따로 적어 놓으셨을 걸세. 내가 이런 얘기 듣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닐세. 자네는 절대 특별한 경우가 아닐세. 하나님의 지문은 어디에나 있네. 자네, 나하고 한 잔 더 할 시간 되겠나?” 그가 빈 잔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보게, 멋쟁이 웨이터.” 그가 웨이터를 향해 소리쳤다. “이번에도 얼음 넣지 말고 주게. 내 제자는 스트레이트를 좋아하네. 웨이터, 버번 한 잔 더 주게(Garçon, encore bourbon)!”

동트기 전, 나는 친구 셋이서 빌린 하루 8달러짜리 싸구려 수도원 골방에 깔린 지저분한 매트리스에서 뒤척였다. 복도 저 끝 공동 화장실에서 학생이 토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 나는 하나님이 바울의 눈을 멀게 하셨을 때 바울이 기도하며 했을 게 틀림없을 말을 했다. 왜 다른 사람을 부르지 않으시고요? 도대체 어떻게 된 하나님이 나 같은 사람을 부르시는 거냐고요? 나는 감리교 목사가 되고 싶지 않다고요.

그 날 밤 암스테르담에서 우연하고 처음에는 초라했지만 마침내 행복한 삶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나 자신의 삶이 아니며, 부르심을 받았고 나 아닌 누군가에게 책임을 지며 외부에서 부가된 주장에 답해야 하는 삶이 시작되었다. 커트 보니것(Kurt Vonnegut, 1922-2007, 미국 소설가)이 말했듯이, “모자를 벗지 말라. 아직도 수 마일을 더 가야 할 테니까!”

고등학교 시절, 어느 날 밤, 고모한테 집안 규정을 어기고 “아버지 얘기해주세요!”라고 졸랐다.

다음은 고모가 들려준 이야기다. 나의 누나와 형이 어릴 때, 아버지가 금융사기를 쳤거나, 은행을 털었거나, 둘 다였다. 정확히 기억하기는 어렵다. 당시, 아버지는 그린빌 역사상 어느 누구보다 안 갚은 돈이 많았다. 아버지가 운영한 도로건설회사 그린빌 픽킨스 스피드웨이가 망했고 기막힌 십여 개 아이디어도 물거품이 되었다. 아버지는 애틀랜타 연방 교도소에, 또는 어쩌면 인디애나 연방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이 모든 일에도, 어머니는 흔들리지 않았고 아버지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아버지는 교도소에서 나와 윌리몬 가정으로 돌아왔다. 아홉 달 후, 아버지와 어머니가 40대였는데도, 내가 태어났다. 그런데 아버지는 못된 버릇이 되살아났고 결국 수습할 수 없는 범죄를 저질렀다. 어느 일요일, 가족회의가 열렸고, 아버지가 떠나는 게 모두에게 낫겠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떠난다고?

어머니도 친척들이 나를 비롯한 자식들을(누나와 형 둘 다 나보다 열 살은 더 많았다) 돌볼 거라는 말을 들은 후 아버지가 떠나는 데 동의했다. 아버지는 유언장에서 제외되었고 버드 형과 해리엇 누나와 내가 아버지에게 돌아갔을 300에이커를 물려받았다. 어머니의 유일한 조건은 “이 어린아이가 그 무거운 짐을 지고 자라서는 안 되기” 때문에 아무도 아버지 얘기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모두 이 약속을 지켰다.

티모시 존스, 나무상자, 디테일

물론, 모두가 카슨 맥컬러스(Carson McCullers), 토니 모리슨(Toni Morrison), 또는 심지어 유도라 웰티(Eudora Welty) 같은 미국의 여류 소설가에게 어울리는 불합리하고 어둡고 숭고한 포크너적인 남부 고딕(Fauknerian Southern Gothic, 초자연적이고 반어적이며 평범하지 않은 사건들이 줄거리를 이끌어가는 미국 소설의 하위 장르. -편집자)이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은 상황을 다르게 다루었다. 한 가족의 품위는 허구라도 가차 없이 보존되어야 했다. 어른들은, 너무나 많은 것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도, 한 아이에게 짐을 지우기에는 너무나 불쾌한 몇 가지를 언급하지 않는 자신들의 능력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이들의 애매함은 나의 에덴에 큰 빈 자리를 남겼다.

나는 스물두 살이었고, 롤리에서 열리는 가족 결혼식에 참석 중이었다. 그때 우리가 모여 있는 모텔 방에 앨리스 고모가 들어와 내게 물었다. “아버지 만나고 싶니?”

“예, 그런 거 같아요.”

고모는 옆방으로 나를 데려갔고, 한 노인이 파이프 담배를 피우며 인사를 건넸다. 우리는 악수를 했다. 내가 본 것은 먼 사촌을 만났을 때만큼의 느낌밖에 없는 나이든 친척이 전부였다.

하나님께서 뭔가를 만들기 좋아하신다는 걸 알아서 얼마나 다행인가? 당신이 바닥부터 시작하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네가 혼자 잘 해 왔다고 들었다.” 그는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듣자하니, 돈도 잘 번다고 하더구나.” 사람들을 구워삶아 돈을 잘 내게 한다며! 아들아, 네가 자랑스럽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클린턴에 자리한 나의 첫 교회에서, 나는 미스 아그네스를 심방했다. 미스 아그네스는 윈드롭 칼리지에서 내 어머니의 룸메이트였다. “윌리 목사님, 목사님이 태어났던 게 어제 같아요!” 미스 아그네스가 아이스티를 내오며 말했다. “목사님이 루비 뱃속에 있을 때, 제가 찾아갔던 게 기억나네요. 그해는 참 끔찍했어요. 루비는 자신이 살든 죽든 개의치 않았어요. 그 아홉 달 동안, 머리카락이 눈처럼 하얗게 변했지요.”

내가 태어났던 해가 ‘끔찍했다.’고?

“그때 루비는 절대 행복하지 않았어요. 마흔 살 여자가 아기를 갖고 놀랐던 거죠.” 미스 아그네스는 내게 과자를 건네며 조금 경멸적인 웃음을 띠고 말했다. “하지만, 목사님이 루비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었어요. 그건 참 다행이에요.”

이러했다. 어쩌다 태어난 나는 출소 후 첫 열매였다. 이런 까닭에, 나는 '계획 출산'이란 말이 불편하며, 1946년 당시 낙태가 쉽지 않았다는 사실에 하나님께 감사한다. 사라부터 하갈과 마리아까지, 성경에 나오는 당혹스러운 임신 이야기에 대해, 하나님을 찬양하라.

내가 아버지에 대한 분노나 아버지를 쫓아낸 가족에 대한 분노나 이들의 거대한 침묵의 음모에 대한 분노를 쏟을 수 있었다면, 내가 원수를 용서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지 시험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주먹을 쥐고 모든 것을 극복한 용감한 희생자일 수 있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알지도 못하는 아버지에 대한 애착이 없었기에 극복해야 할 반감도 거의 없었다. 나는 아버지가 나의 성경 해석을 개선해 주었다고 믿는다. 바울은 갇힌 적이 있었고, 우리 주님도 그러셨다.

당신은 그리스어를 배울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의 노친네가 전과자가 아니라면, 내가 신학생들에게 자랑하건대, 신약성경의 아주 많은 부분이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그가[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셨으니, 우리는 그의 것이요”(시 100:3, 새번역). 주일학교 때 반쯤 암송한 또 다른 빛나는 구절이다. 하나님께서 뭔가를 만들기 좋아하신다는 걸 알아서 얼마나 다행인가? 당신이 바닥부터 시작하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우리가 자생한 존재가 아니라는 건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소유물이라는 걸 시사한다. 존 알렉산더(John Alexander)가 2012년에 낸 책 “교회됨(Being Church)”이라는 책에서 지적했듯이, 신약성경에서 부르심(calling) 또는 소명(vocation)이란 용어는 취업이 아니라 제자도를 가리킨다. 우리는 '영생'에 들어가도록 부름을 받거나(딤전 6:12), 또는 그리스도와 교제하도록 부름을 받거나(고전 1:9), 어두운 데서 불러냄을 받거나(벧전 2:9),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갖도록 부름을 받을 수 있지만(롬 8:30) 어떤 직업을 갖도록 부름을 받지는 않는다. 바울은 천막제조자였지만(행 18:3) 어디서도 천막제조자로 ‘부름을 받지는’ 않는다. 천막제조는 식탁에 빵을 공급했으며, 이것만으로 바울이 이 일에 최선을 다하기에 충분했다.

인간은 직업을 가지며, 소명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티모시 존스, 전통, 디테일

‘신화학자’ 조셉 캠벨(Joseph Campbell)은 소명을 “당신의 지복(至福) 따르기”라고 유명하게 정의한다. 신학자 프레드릭 뷰크너(Frederic Buechner)도 비슷하게 소명은 “당신의 깊은 기쁨과 세상의 깊은 주림이 만나는 곳”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땅에 불을 던지시고(눅 12:49), 아버지가 아들과 분쟁하게 하시며(눅 12:53), 화평이 아니라 칼을 주러 오신 분이(마 10:34) 지복을 의심스럽게 하신다. 예수님은 때로 지복을 무너뜨리는 사명에 참여하라며 징집영장 내밀고 선동적 소명을 주신다. 바울에게 물어보라.

“나는 사람들과 일하길 좋아해. 그러므로…” 또는 “나는 말을 잘 해, 그러니 당연히…” 이것은 소명의 방식이 아니다. 병자들을 돌보는 일은 어떤가? 아니라고? 끌리지 않는다고? 광고직은 어떤가?

소명은 당신의 필요나 욕망이 불러일으키는 게 아니다. 소명은 하나님이 당신에게 원하시는 것이며, 하나님은 소명을 통해 당신의 삶이 변화되어 그분이 이루시는 세상 구속의 한 결과가 되길 원하신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아주 평범했고, 재주도 없었으며, 별 볼일 없는 촌놈이었다. 이들만 보더라도, 타고난 달란트나 내적 열망보다 우리에게 하나님을 위해 할 일을 맡김으로써 삶을 구속하시려는 하나님의 일이 소명과 더 깊은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부르시는 그리스도가 없다면, 내면의 달콤한 목소리는 우리가 불러낼 수 있는 최선이다. 그러나 자신의 주관적 느낌에 바투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 중에 누가 하나님이 판에 박힌 듯이 요구하시는 것만큼 희생이 따르고 미친 일에 자신을 내어맡기겠는가?

“마리아, 어떻게, 당신의 삶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혼외 임신을 하고, 칼이 마음을 찌르는 듯 한 아픔을 느끼며, 십자가에 달려죽을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낳기로 결정했어요?”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아는가?

소명은 자아의 후미진 곳을 뒤적거림으로써 발견되길 기다리는 내적 의향이 아니다. 예수님이 분명하게 말씀하시듯이,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요 15:16).

내가 젊은 시절 암스테르담의 긴 밤에 던졌던 “도대체 어떻게 된 하나님이 나 같은 사람을 부르시는 거냐고요?”라는 질문에 성경이 답한다. 이스라엘과 교회를 선택하신 하나님이 나 같은 자를 선택하신다.

소명은 당신의 필요나 욕망이 불러일으키는 게 아니다. 소명은 하나님이 당신에게 원하시는 거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마음에 이런 저런 형태의 제자도를 두셨다. 모두가 하나님의 창조물로 소명을 받아 하나님이 세상을 구원하시는 일에 특별히 사용 받을 거라 기대할 수 있다. 나의 행복한 목회 생활의 가장 행복한 부분 중 하나는 하나님이 부르시는 방식을 지켜보는 것이다. 갇힌 자에게 편지를 쓰거나, 교회 재정부 모임에 참석하거나, 환자의 요강을 비우거나, 경건한 자녀들을 양육하거나, 배고픈 자들에게 풍성한 식탁을 차려주거나, 공립학교 교사가 되라고.

노스사이드 연합감리교회 조찬 기도회에서(경건하지 않은 시간에 하나님과 소시지 비스킷이 있는 시간에), 나는 거기 모인 평신도들에게 경건하게 요청했다. “매리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조니가 어젯밤에 유치장에 갇혔습니다. 음전운전입니다. 조니를 꺼내기 위해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알아보겠습니다. 매리가 아들 때문에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목사님은 알코올 중독에 대해 얼마나 아세요?” 나의 목양에 감동을 받지 못한 한 형제가 물었다.

“보석금은 어디서 구하시려고요?” 또 다른 사람이 물었다. “저희가 함께하겠습니다. 이것은 기도 제목에서 빼주세요. 저희가 해결할 수 있습니다.”

우리 셋이 유치장 앞으로 갔다. 겁에 질린 젊은이가 구석에 웅크린 채 훌쩍이고 있었다.

“자네, 술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게 얼마나 됐나?” 우리 가운데 하나가 쇠창살 너머로 물었다.

“저는 ‘문제’가 없어요.” 조니가 대답했다.

“다시 묻겠네. 자신의 문제에 대해 언제부터 거짓말을 한 거지? 나도 폭음에 대해서는 알 만큼 알아요. 군대 있을 때부터 술 문제 때문에 힘들었거든. 그래서 자네가 여기서 어떻게 벗어나야 하는지 가르쳐 줄 수 있다고.”

“우리가 자네를 여기서 꺼내 줄거야.” 변호사인 다른 사람이 말했다. “나랑 우리 집에 가자고. 우리 아이들은 다 독립했어. 조니의 어머니는 사는 게 힘드시잖아. 나는 다른 사람하고 클렘슨 대학 풋볼팀 경기 보는 걸 아주 좋아해.”

하나님의 부르심이 들렸다.

1981년 크리스마스이브였다.  노스사이드 연합감리교회는 내가 새로운 목사로 부임하기까지 몇 년 간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상황이 너무도 안 좋아서 그 이전 해에는 성탄절 예배를 준비할 돈도 열정도 없었다. 의기소침한 교인들은 승리가 필요했다. 설령 나 혼자 초를 만들고, 포인세티아 꽃을 기르며, 가성으로 “오 거룩한 밤”을 불러야 하더라도, 하나님의 은혜로 노스사이드에서 나의 첫 크리스마스는 크리스마스 감성이 물씬 풍기는 촛불 축제가 될 터였다.

성탄절 전날 밤 설교의 원고를 마지막으로 마무리하는데, 형한테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방금 돌아가셨다.”

거의 알지도 못하는 아버지가 내가 새 교회에서 맞는 가장 중요한 밤을 자신이 떠날, 이번에는 영원히 떠날 날로 선택했다. 그날 밤에 차를 몰고 교회에 가는데, 내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게 부끄러웠다. 이 비극을 슬퍼하려 애썼지만, 나의 슬픔은 먼 친척이 죽었을 때보다 크지 않았다. 서둘러 교회에 들어갔다. 목사 가운을 입고, 띠 장식을 단단히 매고, 촛불을 밝히라 지시하고, 찬양대에게 내가 좋아하는 “적막한 한 겨울에”(In the Bleak Midwinter) 대신 “참 반가운 성도여”(O Come, All Ye Faithful)를 입당송으로 부르게 했다.

당신에게 교회는 이런 곳이다. 교회는 우리가 찬양하고 싶지 않고 믿음이 있다고 느끼지 못하며 “기쁘고 의기양양하지”(joyful and triumphant, <참 반가운 성도여>라는 찬송에서 “다 이리 와서”로 번역된 부분―옮긴이) 않을 때라도 행진하며 찬양하라고 강요한다. 교회는 당신이 적절한 동기를 부여받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예배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당신이 목사로 부름을 받을 때, 목사이고 싶지 않지만 목사 노릇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순간이 수없이 많다. 당신은 아픔을 겪고 있고 어쩌면 감정적으로, 신학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처했을지 모른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이 슬퍼하도록 돕는 데 전문가여야 하지만, 정작 자신의 상실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알지 못할 수 있다. 목사로서, 당신의 개인적인 문제가 다른 사람들의 필요에 밀린다. 당신은 그들에게 유일한 목사이며, 크리스마스는 일 년에 한 번뿐이다. 그래서 당신은 띠를 단단히 동여매고 기도한다. “나를 이곳에 인도하신 하나님, 내게 냉철한 결단력을 주셔서 이 상황을 헤쳐 나가게 하소서.” 당신은 그러고 싶지 않을 때라도 나가서 그들의 목사처럼 행동한다.

당신은 목사가운띠를 단단히 매고 기도한다. “나를 이곳에 인도하신 하나님, 내게 냉철한 결단력을 주셔서 이 상황을 헤쳐 나가게 하소서.”

다른 많은 경우와 교회에서처럼, 그해 슬픈 노스사이드에서 맞은 크리스마스이브에도, 나는 감정을 억제하는 목회술을 발휘하며 내 소명을 수행했다. 일어나 설교자 연기를 했다. 나를 사기꾼이나 위선자라고 비난하지 말라. 그날 밤, 내가 아닌 누군가를 위해 기도할 수 있다는 게 거의 감사했고, 세례가 나 자신의 가족보다 엉망인 교회 가족을 내게 준 게 기뻤으며, 임신한 동정녀가 아버지 노릇을 못한 아버지의 죽음을 제대로 슬퍼하지 못하는 아들보다 더 뉴스거리가 된다는 게 즐거웠다.

나는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한 아버지의 불행한 희생자가 아니었다. 나는 특권을 누린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부르심을 받았으며, 내 소명을 받아들여 심호흡을 하고 강단에 서서 메시지를 전하며, 사람들이 그 밤을 헤쳐 나가도록 돕는 성경 구절을 제시해야 했다. 그들이 스스로에게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말할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누군가 소식을, 에덴의 동쪽이든 그린빌의 북쪽이든 간에 어둠의 땅에 거하는 모두에게 좋은 소식을 전해야 했다. 설령 우리는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더라도(요 3:19), 하나님은 어쨌든 성육하신다: 그리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

우리의 역사 하나하나마다, 후회와 마무리되지 않은 일들이 있다. 세상은, 좋기는 하지만, 절대 충분하지 않다. 완전한 구속이나 완전한 보상을 위한 시간과 공간이 충분하지 않다. 아퀴나스는 이렇게 말했다. 전능하신 하나님도 우리 유한한 인간과 한 가지 유한을 공유하신다. 하나님일지라도 우리의 과거를 없는 것으로 하지 못하신다. 잃어버린 날들을 되찾을 수 없으며, 과거를 바꿀 적절한 성경구절을 생각해 낼 수 없으며,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 없다.

그럴 수 없다. 이때 당신은 말씀이, 영원한 로고스가 육신이, 우리의 육신이 되어 우리와 함께 거하신 것에 감사한다. 하나님은 영으로 남길 거부하셨다. 말씀이 침노해 우리가 우리에게 할 수 없는 말을 하시고, 빛이 우리의 어둠을 비추신다. 하나님이 혼란과 후회로 가득한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셨다. 이 이야기를 전할 사람은 우리뿐이다. 우리는 어떻게든 걸음을 내딛는다. 우리는 노래한다. 참 반가운 신도여 다 이리 와서. 신도가 아닌 이들도, 다 이리 오라. 어쨌거나 그분께 경배하자.

놀라움 중의 놀라움은, 아무도 들어본 적이 없는 빌어먹을 사우스 캐롤라이나 그린빌의 이름도 아이러니한 서밋 드라이브(Summit Drive, 저자가 담임하는 교회가 위치한 동네 -옮긴이)에서, 실의에 빠진 작은 교회가 도둑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할 의지조차 없는 감성적으로 미숙한 목사와 함께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했다는 것이다. 알파와 오메가께서 우리의 유한에 들어오셨고, 우리의 허비된 역사에 성육하셨다.

나는 어쩌다 태어났고 아버지 없이 살았다. 하나님, 당신께 올 수 없는 입술이 부정한 자들에게 오소서. 주님, 위험하게 사소서: 나를 보내소서.


윌리엄 윌리몬(Rev. Dr. William H. Willimon)은 듀크대학 교목을 지냈으며, 이 글의 원 출처인 “어쩌다 목사: 회고록”(Accidental Preacher: Memoir, Eerdmans, 2019)를 비롯해 많은 책을 냈다. 작가의 허락을 받고 사용. 모든 이미지의 출처 https://timothyjonesfinear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