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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이거 우즈에게 용서를?

    <왜 용서해야 하는가>를 읽고

    - 원충연

    2010년 01월 01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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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불륜 사건 때문에 모든 것을 잃을 위기에 빠졌다. 불륜 사건이 언론에 밝혀지자 우즈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사과의 글을 쓰며 골프를 무기한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제 부정이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그들에게 상처를 줬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아주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고 용서를 구합니다. 제가 입힌 손해를 회복할 수는 없겠지만,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가족이 시간을 갖고, 사생활을 보장 받고, 개인적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안전한 피난처를 갖는 것입니다. 많은 영혼의 탐색 끝에 저는 직업 골프 생활을 무기한 중단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더 나은 남편, 아버지, 그리고 사람이 되기 위해 주의를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언론과 여론은 가혹하다. 매일 '우즈의 여자들'에 대한 뉴스를 전하고, 광고주들이 떠나고 있기 때문에 우즈는 파산할 지경에 이르렀다고 보도한다. 흥미위주의 선정 기사를 내며 우즈의 삶을 파헤치는 언론은 마치 신이 난 것 같다. "용서를 구합니다."라는 우즈의 말을 전하는 언론은 드물다. 그의 말이 얼마나 진실한지는 시간이 말해 주겠지만, 위의 글에는 어떤 진정성이 배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용서'라는 말은 인기가 없다. 종교적인 냄새가 나고, 진부하다. '이혼', '15번째 여자' '숨겨둔 딸' 같은 말이 더 흥미를 끈다. 그리고 "불륜을 저지른 부유한 유명인에게 용서라니?"라는 식이다.

    하지만, 선정적인 뉴스 때문에 들뜬 마음을 진정하고 생각해 보자. 타이거 우즈라는 한 사람의 삶과 그의 영혼을 생각한다면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 솔직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진정으로 용서를 구하는 게 아닐까? 그리고 시간을 두고 잘못을 바로 잡고, 치유를 추구하는 게 아닐까?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가 쓰고 지난 달 한국어로 출간된 <왜 용서해야 하는가>라는 책은 그런 의미의 용서에 대해 말하고 있다. 잘못을 바로 잡고, 가슴 속의 죄의식과 응어리를 풀고, 증오의 벽을 무너뜨리고, 결국에는 사람을 살리고 손에 잡힐 정도로 실체가 있는 용서를 경험한 여러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미국 루이지애나 주에 사는 빌 채드는 아들 마이클을 교통 사고로 잃었다. 상대편 운전자가 술에 가득 취해 차를 몰아 충돌 사고를 낸 거다. 그러나 정의의 수레바퀴는 느리게 굴러갔다. 피고의 유죄를 입증하고 6년 형이 선고되는 데만 1년이 걸렸다. 피고에게 훈련소 형식의 프로그램이 도움이 될 거라고 제안한 마이클의 가족에게 피고의 어머니는 최고 형량을 받도록 압력을 넣었다는 비난의 편지를 보냈다. 그리고 자기 아들이 죽었더라면 원한 따위는 품지 않았을 거라고 말했다. 빌은 피고가 법의 심판을 받고 '일이 마무리 되면' 모든 것이 잘 될 거라고 믿었다. 죄값을 치를 사람이 결정되고, 법의 정의가 구현되면 희생자의 고통이 완전히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참고로 미국의 몇 주에서는 피해자 가족이 범인의 사형장에 참석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의회에 제출되기도 했다.

    그러나 선고가 내려졌는데도 빌은 영혼에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구멍이 생긴 것 같아서 괴로웠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자 아들을 죽인 사람을 용서하기 전에는 평화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기 스스로 용서의 길을 걸어야 했던 거다. 술에 취해 운전했던 사람을 용서해야 했고, 이런 불행을 묵과한 신을 용서해야 했고, 아들 마이클을 용서해야 했으며, 그리고 자신을 용서해야 했다. 자신을 용서하는 일이 가장 어렵고, 근본적인 문제였다고 한다.

    빌처럼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 때문에 받은 고통 때문에 괴로워하고, 분노하고, 때로는 증오하며 쓰라린 가슴을 안고 살고 있다. 책에 등장하는 어떤 사람은 여동생이 끔찍한 살인 사건으로 목숨을 잃자, 범죄자를 찾아 복수를 하기 위해 몸부림치다가 끝에는 절망을 이기지 못해 자기 목숨을 끊어 버리기까지 했다. 그러나 지은이는 아무리 마음을 짓누르는 비통함이 크더라도 용서를 통해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 고통이 일상 생활에서 왔는지, 아니면 전쟁이나 인종학살 같은 거대한 역사적인 사건에서 비롯됐는지 상관 없이 용서로밖에 해결할 수 없다는 거다.

    베트남 전쟁 때 미군의 헬리콥터 조종사였던 존 플러머는 1972년 트랑방이라는마을에 대한 네이팜탄 폭격에 참가했다. 그런데 당시 폭격 때문에 절규하며 손을 벌리고 달여오는 킴 푹이라는 소녀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퓰리쳐상을 받아 세계의 사람들에게 역사적인 장면으로 기억되게 됐다. 그러나 존에게 그 사진은 24년 동안 자신을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사진이 됐다. 그러던 1996년 재향군인의날 존은 우연히 베트남 참전 용사 기념식에서 평화의 연설을 하는 킴 푹을 만나게 된다.

    Vietnamese children fleeing from Napalm attack on their village

    킴 푹은 그때 입은 화상으로 아직 통증이 심하지만 마음 속에 분노나 고통은 없으며 자신보다 더 큰 고통을 당한 사람이 많다고 했다. 그리고 마을을 폭격한 사람을 용서하고 이제는 평화를 위해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존은 자기도 모르게 킴 푹에게 다가가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킴 푹은 "괜찮아요. 당신을 용서합니다."라고 말했다. 순간 24년동안 죄의식 때문에 괴로워했던 존은 평화를 맛보게 됐다.

    독일에 살던 유대인 요제프는 어렸을 때 2차 세계 대전이 터져 가족과 함께 폴란드, 러시아의 시베리아, 팔레스타인으로 쫓겨 다녔다. 가는 곳마다 온갖 괴롭힘을 당한 요제프는 증오를 품게 됐다. 그리고 더 이상은 짓밟히며 살 수 없다며 이스라엘 군대에 들어갔다. 요제프가 속한 부대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내 쫓으며 잔인하게 때리고 고문을 했다. 불현듯 요제프는 어린 시절 피난을 다니며 겪었던 일들이 생각났고 순간 엄청난 갈등과 혼란을 느꼈다. "그때 저는 어느덧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쯤 읽고 나니까 '한국 사람들은 이 책이 말하는 용서를 받아들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 전쟁, 독재 정권, 급속한 현대화를 겪으며 상처 받고 가슴을 앓으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전쟁 당시와 이후 수많은 민간인들이 아깝게 생명을 잃고 폭력에 희생되어 왔기 때문이다. 2005년에 국가 독립 기구로 활동을 시작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진실위)가 민간인 학살사건의 진실을 어느 정도 밝히고,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의 넋을 기리는 모임도 마련했지만 아직도 수많은 진실이 땅속에 묻혀 있고, 생존해 있는 사람들의 마음도 땅속에 묻힌 심정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진실위의 활동에 대해 "왜, 지나간 일을 끄집어 내냐?"며 분노하는 사람들이 있고, 친일인명사전이 나오니까 어떤 사람은 친북인명사전을 만든다고 받아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용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 사실 지은이에게 용서란 잘못을 무조건 덮어주고 상처를 입힌 사람에게 아무 잘못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만약 유태인을 학살한 나치는 아무 잘못이 없고 그들이 책임 질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죽음의 수용소에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을 모욕하는 것이고, 비윤리적인 행동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에게 진정한 용서란 모든 정황을 참작한 후, 아무런 변명 없이 저지른 죄를 직시하는 행동을 의미한다. 진실은 분명히 밝혀지고, 고백되어야 한다. 그런 다음 죄악의 공포, 혐오스러움, 그리고 사악성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 그 죄를 저지른 사람과 깨끗이 화해해야 한다. 벌만 주고 회복하지 않으면 가장 큰 범죄를 저지른 것이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용서는 좌와 우의 문제도, 남과 북의 문제도 아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진실이라는 빛을 보고, 영혼의 자유를 찾는 문제다. 타이거 우즈도 사람이듯, 한국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던 사람들도 평화를 바라는 영혼을 가진 사람이다. 타이거 우즈에게 용서가 필요하듯, 하나 둘씩 세상을 뜨고 있는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니에게도 용서가 필요하지 않을까? 미래 세대에 증오만을 물려줄 수는 없지 않은가.

    이 책에 소개된 이들처럼 우리네 사람들도 자신이 겪은 끔직한 이야기를 두려움 없이 말 할 수 있고, 오랫동안 죄의식을 지고 왔던 사람들도 속 시원히 고백할 수 있다면 어떨까? 아마 오마이 뉴스 기자도 그런 사람의 이야기를 기사로 쓸 수 있을 거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응어리를 풀 수 있고, 결국 남과 북의 사람들도 평화에 한 걸음 더 다가가게 될 것이다. 그러면 아쉽게 내년 4월이면 활동을 중단하는 진실위의 진실과 화해를 위한 노력이 사람들의 삶 속에 살아 계속 진척될 것이다. 현실을 모르고 하는 이상적인 소리만은 아니다. 이 책에 기록된 여러 나라 사람들의 실제 경험이 그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Cover of the Korean edition of Why Forg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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