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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힘, 용서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

July 2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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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가 있다. 특히, 죄를 짓는 인간을 볼 때는 무력을 써야 할지, 겸허하게 사랑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그럴 때는 늘 겸허하게 사랑하라. 그렇게 하기로 다짐하면, 최종적으로 전 세계를 복종시킬 수 있다. 애정 어린 겸손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

-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아랍과 이스라엘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둘 중 어느 한쪽에 속해 있던 많은 사람이 그랬듯, 팔레스타인에 사는 비샤라 아와드도 불의에 동참하다 상처를 입고 용서를 위해 평생 몸부림쳤다.

1948년, 아랍과 유대 정착민이 끔찍한 전쟁을 벌이는 동안 팔레스타인인 수천 명이 목숨을 잃고 그보다 더 많은 이들이 집을 잃었습니다. 우리 가족도 예외는 아니었지요. 아버지가 유탄에 맞아 돌아가셨는데 장사 지낼 곳이 없었습니다. 양쪽에서 날아오는 총탄이 무서워 아무도 그 지역을 떠날 엄두를 내지 못했으니까요. 기도해줄 성직자도 없었습니다. 결국 어머니가 성경 구절을 낭독하고 함께 있던 사람들이 마당에 아버지를 묻었습니다. 시에 있는 묘지에 아버지를 옮길 방법이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스물아홉 살에 미망인이 되어 아이 일곱 명을 홀로 돌보아야 했습니다. 그때 저는 겨우 아홉 살이었죠. 몇 주간 이어진 교전으로 발이 묶여서 지하실 밖으로 나가지 못하던 어느 날 저녁 요르단 군대가 들이닥치더니 우리를 예루살렘 구 시가지로 쫓아냈습니다. 그날 이후 우리가 살던 집과 우리가 쓰던 세간을 보지 못했습니다. 옷가지만 간신히 챙겨서 등에 지고 길을 떠났습니다. 몇 사람은 잠옷 차림으로 떠나야 했습니다.

예루살렘 구시가지에서 우리는 난민이었습니다. 세간이 전혀 없는 석유 저장고에 수용되었죠. 한 무슬림 가족이 담요와 음식을 조금 나눠주었습니다. 그곳에서의 생활은 아주 척박했습니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잠들던 밤들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간호사 공부를 하신 어머니는 병원에서 월급으로 25달러를 받는 일자리를 구하셨습니다. 밤에는 일하고 낮에는 학업을 이어가셨죠. 우리는 고아원에 맡기셨고요.

누이들은 무슬림 학교에 들어갔고, 남자 형제들은 영국 여자가 운영하는 시설에 들어갔습니다. 제게는 너무나 큰 충격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아버지를 잃었고, 그다음에는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들과 떨어져야 했으니까요. 가족은 한 달에 한 번만 방문할 수 있었고, 저는 그 시설에서 12년을 지내야 했습니다. 시설에는 우리 형제 3명과 다른 아이들 80명이 함께 지냈습니다. 고통의 연속이었죠. 늘 먹을 것이 부족했습니다. 그나마 나오는 음식도 끔찍했고 대우도 가혹했습니다.

성인이 된 비샤라는 미국에 건너가 학교를 다녔고 미국 시민이 되었다. 그리고 훗날 이스라엘로 돌아가 기독교 학교 교사가 되었다. 비샤라는 지난날을 이렇게 회상했다.

처음 일 년은 정말 괴로웠습니다. 이룬 것이 별로 없어서 패배감만 들었죠. 유대인 압제자들을 향해 분노가 쌓여갔습니다.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모두 팔레스타인인이었고 모두 저와 똑같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학생들을 도울 수 없었습니다. 증오심이 저의 손발을 다 묶어놓은 탓이었죠. 저도 모르게 어릴 적부터 그런 증오를 품어왔던 겁니다.

어느 날 밤, 울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유대인을 증오한 것을 용서해달라고, 증오심이 저의 삶을 지배하도록 놔둔 것을 용서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제게서 좌절과 절망, 증오를 거두어가시고, 그 자리에 사랑을 심으셨습니다.

보신(保身)과 개인주의를 중시하는 문화에서는 용서를 비웃기 일쑤다. 사람들은 비샤라의 경험처럼 용서가 상처를 치유하거나 고통스러운 기억의 짐을 덜어줄 수 있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고려하려 하지 않는다.

예루살렘의 잘 알려진 팔레스타인 신부 나임 아틱의 아버지는1948년에 이스라엘 군에게 모든 것을 빼앗겼다.

누군가를 미워하면, 증오의 힘이 그를 사로잡고 탈진시킵니다. 증오와 원한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십시오. 가끔은 그 싸움에서 이기기도 하고, 가끔은 흠씬 두들겨 맞기도 할 것입니다. 그 과정이 너무 힘들고 어려워도, 증오가 당신을 집어삼키지 못하게 하십시오.

사랑과 용서의 계명을 삶으로 살아내려는 노력을 멈추지 마십시오. 예수님의 메시지에 담긴 힘을 희석시키거나 피하지 마십시오. 비현실적인 계명이라고 일축하지 마십시오. 실제 삶에 적용하기 편하게 자기 마음대로 계명을 재단하지 마십시오. 자신에게 잘 맞게 계명을 바꾸지 마십시오. 있는 그대로 두고, 용서를 갈망하고, 용서하고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쉽게 상처받는 허약한 사람들이나 용서를 이야기한다고 여기지 마라. 용서는 용서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를 힘 있게 한다. 가장 힘든 순간에 고통을 완화시켜, 응징과 인간적인 공평함에 관한 집착을 내려놓고 마음의 평화를 경험하게 한다. 궁극적으로 용서는 긍정적인 연쇄 반응을 일으켜 우리가 얻은 용서의 열매를 다른 이들과 나누게 한다.


이 글은 《왜 용서해야 하는가》(포이에마)에서 인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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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Johann Christoph Arnold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

저자는 결혼, 부모역할, 교육, 노년 등을 주제로 활발한 저작, 강연 활동을 했으며, 기독교 공동체 브루더호프에서 목사로 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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