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Account Sign Out
My Account
    View Cart

    Subtotal: $

    Checkout
    Morning over the bay

    예수를 위한 투사

    클라우스 마이어 할아버지 이야기

    - 아놀드 마이어 쓰고박소혜 번역 (Arnold Meier)

    2010년 04월 16일 금요일
    0 의견
    0 의견
    0 의견
      등록

    *클라우스 마이어는 지난 1월 2일 다벨 공동체에서 갑작스레 돌아가셨다. 향년 77세였다. 그는 아내 이레네와 10명의 자녀들 그리고 50명의 손자들을 남겼다. 다음은 클라우스가 우리곁을 떠나간 다음날 그의 아들 아놀드가 자녀들과 젊은이들에게 아버지의 생에 대해 들려준 이야기다.

    최근 몇 년 동안 아버지와 나누었던 얘기 중 몇 가지를 나누고 싶습니다. 누군가가 죽었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목적 있는 인생을 살았느냐’라는 질문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 각자, 그리고 우리 모두는 그 목적을 발견해야 합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를 여기 두셨는지 말입니다. 그 다음 우리는 그 목적에 충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제 아버지가 제게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는 짤막했습니다. 편지에는 "예수를 위한 투사가 되는 것이 중요하단다. 이것은 영적 전투이며, 전투가 어려워지면 어려워질수록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얻게 되지."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또 다른 편지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지요.

    "우리가 부르는 노래 중에 '예수께 나오라, 주께 나오라, 바로 지금 예수께로 오라.'라는 노래가 있는데, 이 노래는 우리를 도전한단다. 그리고 이것만이 우리가 지금 바로 듣고 따를 수 있는 유일한 부르심이야. 이때 필요한 것은 예수를 위해 결심하는 것뿐이지. 결정을 했다면 곧바로 전투가 시작돼. 독일의 블룸하르트 목사는 예수의 제자가 12명밖에 없었던 것은 전투가 우리 자신의 육신에서 시작되고 끝나기 때문이고, 또 하루도 빠짐없이 이 싸움을 기꺼이 싸우고자 하는 이가 극히 드물기 때문이었을 거라고 말했어. 우리의 '육신'은 하나님 나라를 만들고 싶어하겠지만 그건 쉽지 않은 일이야. 우리에겐 자신의 육신을 억누를 사령관이 필요해. 예수 그리스도를 사령관으로 삼지 않는다면, ‘독실한 척’은 할 수 있겠지만 하나님의 나라에는 들어갈 수 없단다."

    돌아가신 후 아버지의 주머니에서 발견된 쪽지에도 위와 같은 생각이 아버지 특유의 휘갈겨 쓴 글씨체로 써있었습니다.

    제 아버지는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나셨는데 아버지의 부모님은 아버지가 어렸을 때 독일의 론 브루더호프(Rhoen Bruderhof)로 옮겨왔습니다. 이후 게슈타포가 1937년에 공동체를 나라에서 추방했고 할아버지 한스를 투옥했습니다. 아버지는 5살 때 할아버지께 쓴 편지를 늘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그 편지에서 아버지는 경찰이 감옥에서 할아버지를 풀어주지 않으면 괭이를 갖고 쳐들어가 벽을 무너뜨려 아버지를 구할 것이라고 썼습니다. (놀랍게도 할어버지는 이후 풀려나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가족은 공동체와 함께 영국으로 옮겼다가 다시 파라과이로 갔고, 그곳에서 아버지는 초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의학 공부를 계속해 나갔습니다. 1961년에 공동체 전체가 북미로 이주해갔고 이주 직후 저희 부모님은 결혼을 하여 가정을 꾸리셨습니다.

    나의 부모님, 클라우스와 이레나(약혼 당시), 1959

    나의 부모님, 클라우스와 이레나(약혼 당시), 1959

    어렸을 때 나는 매일 자명종 시계가 아닌 방 벽 맞은 편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잠을 깼습니다. 그 소리는 찰칵찰칵, 덜커덕덜커덕하다 한참 가만히 있는 듯 있다가도 얼마 안 있어 한층 더 큰 찰칵거리는 소리로 이어지며 브릉거리는 소리를 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가 오래된 타자기로 편지를 쓰는 소리였습니다. 아버지는 수십만 통의 편지를 쓰며 전세계 사람들과 교류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이렇게 많은 편지를 쓰셨음에도 맞춤법은 형편 없으셨습니다. 아버지가 여행을 떠나 집으로 편지를 보내올 적이면 그 글을 읽는 사람은 글씨를 판독하느라 꽤 많은 시간을 들여야 했었지요. 아버지가 전하려는 말을 알아 맞추는 것이 하나의 코미디 같은 때도 많았습니다! 가끔 이런 상황이 당혹스럽게 여겨져 아버지께 한마디 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래도 아버지는 이렇게 대꾸하셨지요. "그렇다고 내가 글을 안 쓸 것 같아? 내 실수 때문에 사람들이 기뻐한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냐!" 아버지의 이 말씀은 내게 중요하게 다가왔습니다. 내 약점에 대해서도 웃을 수 있는 것, 그리고 내 실수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킬킬대더라도 낙심하지 않는 것 말입니다.

    또 하나의 사건은 내가 대학에 다닐 때 일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당시 많은 고민을 안고 계셨지만 우리는 그것에 관해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저 평소와 달리 조금 우울해 보이셨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활기차고 재미있는 모습이 되어 계시더군요. 우리는 하룻밤 사이에 뭔가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겠거니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 변화가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작년에 제가 “아버지, 그 때 무슨 일이 있었나요?”라고 묻고 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다음과 같이 답하셨습니다.

    "꿈을 꿨는데, 난 바닥이 끝없이 갈라진 절벽에 매달려 있었어. 이때 굵은 밧줄 하나가 날 붙잡아주더군. 꿈을 꾸면서도 나는 그 밧줄이 나를 도와주려고 손을 뻗은 형제 자매들의 사랑임을 알았단다. 하지만 그 굵은 밧줄은 가닥가닥 끊어져 있고, 나는 다른 밧줄 하나에 매달려 있었어. 꿈에서 보니 그것은 수년 동안 내가 가지고 있던 내 교만과 완악함이었지. 이것이 매번 다른 굵은 밧줄 가닥을 끊어냈던 것이고 이제 나는 그 한 가닥 줄에만 매달려 있었던 거야. 꿈 속에서 나는 큰 소리로 울부짖었어.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그랬더니 그 깊은 절벽 틈에서 실 한 줄이 나와 나를 끌고 올라갔어. 일어나니 밤중에 일어난 일의 의미가 너무 선명해 그것에 대해 뭔가를 말할 필요조차 없었지.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게 된 거야. 내겐 우리 모두에게 미치는 형제 자매들의 사랑과 보살핌을 받아들이는 게 필요했던 거야."

    Klaus plays St. Nickolas

    우르과이에서 의사로 일하시던 아버지

    우리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어떤 주제든 수많은 사고와 토론, 주장 등을 통해 지적으로 접근하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아버지의 삶은 지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마음으로 사는 삶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늘 당신의 자손들을 비롯한 모든 10대 청소년들에게 많은 관심을 갖고 계셨습니다. 몇 해 전에 아버지가 쓰신 글귀 몇 개를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 짓고자 합니다.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를 발견해 가는 두 가지 길에 관한 것입니다.

    첫째, 직접적으로, 타협하지 말고 주님을 구하고 또 찾는 방법이 있습니다.
    둘째, 여전히 자기가 하고 싶은 일, 자기 목표를 추구하면서 그것을 통해 예수를 찾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을 찾는 것에 관해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지요.

    두 번째 방법을 택한다면 그 길은 우리를 탕자의 길로 인도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잘 알듯이 결국 그 길의 끝은 도덕적 파탄이지요. 이야기 속 탕자는 거기에서 자기 아버지의 집을 기억해내고 그곳이 얼마나 좋았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아버지의 집이 좋았다는 사실을 발견하기도 전에 죽을 수도 있다는 게 문제이지요. 에이즈나 환각 같은 것으로 생을 마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꼭 기억하십시요. 어떤 방법으로든지 여러분은 결국 예수님 앞에 서야 할 것입니다. 누구도 그분을 막을 수 없으며, 그분에게서 피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에게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지는 그 때, 불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입니다.

    첫 번째 방법이 두 번째 것보다 훨씬 낫지만, 이때 우리는 그분의 부르심을 들어야 합니다. 이 부르심은 듣기를 원하는 사람, 그리고 싸우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예비되어 있습니다. 사실 순교자의 죽음으로 죽는 것이 스스로에 대해 매일 죽는 것보다 훨씬 쉽습니다. 그리고 자발적으로,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매일 죽는 것이 이를 갈며 영혼이 고통당하는 곳에 내려가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누군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나의 아집이라고 말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나와 하나님- 둘 중 무엇이 더 중요합니까? 하지만 이 질문을 최대한 날카롭고 명료하게 가다듬지 않으면 우리는 스스로를 속이게 될 것입니다. 그 누구도 나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시킬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자신의 의지력을 발휘하여 행해야 하고 스스로 고민해야 하고 스스로 소망해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저마다의 과업을 감당하도록 이 땅에 보내졌습니다. 이 땅에 몇 해 살다가 그 다음에는 다시 영원 속으로 들어갑니다. 이 과업이란 이 땅을 다시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지금 이 땅은 처음부터 속이는 자였던 사탄의 손에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길을 선택하게 하는 것은 사탄이며, 그는 온갖 일들에 개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사실이 슬프게만 들린다면, 여러분은 엄청나게 착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위해 살고 싸우며 자신을 희생하는 것만큼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것도 없으니까요."

    Klaus in the shop
    0 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