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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에서 자유로운 의료

    - 모니카 맘슨, 밀턴 짐머만

    2019년 01월 10일 목요일

    다른 언어들: Deutsch, español, Eng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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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사와 환자들이 진료비를 주고 받지 않는 공동체에서 일하는 것은 어떨까? 플라우 출판사는 브루더호프의 의사인 밀턴 짐머만과 모니카 맘슨에게 왕진, 새로운 의료기술, 죽음과 탄생의 순간들과 생명을 돌보는 일이 왜 즐거운지 들어 보았다.

    플라우: 어떻게 의사가 되셨습니까?

    밀턴 짐머만: 네 살 무렵에 류머티스 관절염으로 고열에 시달렸는데, 저를 돌보던 의사가 왕진을 몇 번씩이나 하는 겁니다. 정말 친절한 분이어서 제가 참 좋아했지요. ‘나도 크면 저분처럼 되고 싶다.’ 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겁니다. 매사추세츠의 애머스트 대학을 마친 후에 1954년부터 펜실베니아 의대를 다녔습니다.

    의대에 다니는 동안 예수님을 만났어요. 아니, 예수님이 저를 찾아 오셨지요. 이것이 제 삶에 지표가 되어 예수님의 삶과 말씀, 산상수훈을 정말 따를 수 있는 교회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평화주의자가 됐어요. 그 결과로 1957년 대체 복무를 할 곳을 찾다가 파라과이에서 브루더호프가 운영하던 병원을 선택했고, 2년 후 아내와 함께 브루더호프에 합류했습니다.

    저는 지난 60년 간 의사로 일하면서 주로 브루더호프의 가정의로 일하며 공동체 가족을 돌봤어요. 그뿐 아니라 지역 병원이나 근처에 농장 이주 노동자를 위한 보건소에서 일했습니다.

    모니카 맘슨: 저는 41년 간 의사로 일했어요. 브루더호프에서 자라면서 아주 어렸을 적부터 항상 간호사가 되길 바랬어요. 그런데 고등학교 졸업반이 되었을 때, 공동체 멤버가 되고 싶다고 했더니 공동체가 저에게 의사가 되라고 권유하는 겁니다. 여의사가 공동체에 필요했던 거에요. 저는 아주 놀랐지만 그러겠다고 했지요. 그후부터 지금까지 아주 즐겁게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학사를 마치고 1975년 뉴욕 알바니 의과대학을 다녔는데, 시작부터 여기 앉아 계신 밀턴이 제 멘토 역할을 해오셨지요.

    Monika Mommsen and Milton Zimmerman

    모니카 맘슨과 밀턴 짐머만

    당시에 브루더호프 공동체에 다른 여의사들이 있었습니까?

    모니카: 네. 다른 영국 출신 의사 분들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 브루더호프에 동참하시며 남미 파라과이까지 옮겨 가셨어요. 그분들이 그곳에서 병원 설립을 도우셨습니다. 이제는 은퇴하셨지만요. 그리고 존스홉킨스 의대에서 가르치셨던 선구적인 전염병 학자인 미리암 브레일리 박사도 브루더호프 멤버였고, 저희 가족의 친구셨지요.

    Why We Live In Community Korean

     독일 신학자 에버하르트 아놀드의 공동체론. 공동체로 살아야 하는 이유가 11편의 ‘고백’에 담겼다. 브루더호프 공동체 설립자인 저자의 삶과 묵상에서 나온 글로, 공동체 생활의 본질과 핵심을 보여 준다.  

    책 소개

    공동체 내의 의료활동

    브루더호프 같은 기독교 공동체에서 일하면서 여러분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돌보고 계신데요. 실제로 어떤가요?

    밀턴: 어, 우리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이상으로 잘 돌보고 있는데, 요람에 가기 6개월 전부터 시작하거든요. 모니카, 그렇지 않나요?

    모니카: 엄마들은 임신 증세가 보이면 저를 믿고 찾아오곤 합니다. 보통 저희는 심장박동이 들리는 12주부터 진료를 시작하는데요. 물론 출산 전까지 최선을 다해 돌보려 하고, 만약 걱정거리가 있다면 전문가를 만나도록 합니다. 하지만 제가 엄마들에게 말할 수 있는 가장 놀라운 것은 이 단계에서 의사가 의학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모니터하는 것 외에는 거의 없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임신을 주관하고 계시니까요. 어떤 면에서 의학의 능력이라는 것이 출생 전에 너무 제한적이라는 사실은 무엇이 이 시기에 가장 중요한지에 초점을 맞추도록 하지요. 새로운 생명의 창조, 신비를 목격하는 것입니다.

    가장 특별한 경험은 새 영혼이 세상에 도착하여 첫 울음소리를 터뜨리는 것이다.

    저는 보통 출산 과정을 돕는데 정말 기도가 절실합니다. 그런데 그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이 세상에 새로운 영혼이 도착하는 것을 지켜보고, 어린 생명이 숨을 깊게 들이쉬며 터뜨리는, 정말 중요한 첫 번째 울음소리를 듣는 것은 가장 특별한 경험입니다. 

    그 후에 저는 모든 건강검진과 예방접종을 하고, 아마도 어린아이들이 겪는 기관지염이나 귓병, 그리고 10대의 여드름까지 돌보지요. 그렇게 자라난 아이들이 결혼해서 아이를 갖기 시작하면 다시 그들의 아기들을 돌봐요. 최근에는 제가 처음 돌봤던 아이들의 손자들을 보기 시작했어요.

    대체요법 같은 것도 쓰십니까?

    모니카: 아니요. 일반적인 과학에 기초한 치료를 합니다.

    의사로서, 두 분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하는 현장에 계신 적이 많을 텐데요.

    모니카: 정말 어려운 순간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이미 뱃속의 아기가 죽은 것을 알면서도 출산하는 엄마를 돌본 적이 있어요. 그러나 이 아기가 하나님 눈에는 정말 값지고, 뱃속에 있을지언정 아이가 이 땅에서 할 일을 다 이루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이미 죽은 아이를 환영하는 순간은 정말 아주 이루 말할 수 없이 감동적입니다. 그렇게 부모와 함께 슬픔을 나누는 것이 저희가 누리는 특권이지요. 무슨 일이든 그 가족의 경험을 공동체 전체가 누릴 수 있도록 하려 합니다.

    모든 아이들, 심지어는 유산이 된 아기라도 메시지를 품고 있습니다. 단지 부모뿐 아니라 이 아이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에게 말입니다. 생명에 대한 존중과 중요성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소중해진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동체 밖에서 의료 행위는 보통 상업적인 환경과 맞닿아 있는데요. 의사와 환자, 의사와 피고용인, 의사와 환자가 가입되어 있는 보험회사 사이에 자금 줄이 흐르게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일반 의료행위와 금전 거래 없이 의료행위를 하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밀턴: 저는 필라델피아 근교, 우리 집에 첫 진료실을 차렸습니다. 진료실을 방문하는 사람은 3.5달러, 가정방문을 요청할 경우에는 5달러를 받았지요. 상상이나 가요? 그렇게 벌어 1년 안에 빚도 다 갚고, 신나게 일했지요. 그래도 의사와 환자 관계가 금전 거래로 이루어진다는 걸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기술이 환자를 최선으로 돌보는 수단이 되기보다는 돈에 끌려 다니는 꼴이 되었다.

    여기 브루더호프는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공동으로 나누며 살기 때문에 돈은 의사와 환자 사이에 아무런 관련이 없고, 우리의 진료 태도에도 전혀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의사와 환자의 신뢰관계가 이렇게 완전한 곳은 찾기 힘들 겁니다.

    모니카: 누군가를 한 인간으로서 돌보는 걸 가장 중요하게 여기면 참 삶이 자유로워요. 우리가 무엇을 하든, 하지 않든 제 수입에 어떤 영향도 주지 않습니다. 전혀 안받거든요. 오늘날의 일반 의료계를 보자면, 의사들은 보통 하루에 20-25명의 환자들을 진료합니다. 진료시간이 10-15분 정도인데 이래 가지고는 환자들 얘기를 제대로 들을 수 없어요. 여기 공동체에서는 시간이 충분합니다. 경제성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또한 동료(브루더호프에는 십 여명의 의사가 있다)와 간호사, 다른 직원과의 관계는 아주 돈독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다 신앙을 갖고 있고, 이 공동체에 헌신했기 때문이지요.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공동체 멤버들만 돌보는 건 아닙니다. 돈이 없는 이웃들에게 무상으로 치료를 하는데, 이런 일은 참 기쁨을 줍니다. 경제적 이해관계로 만나지 않은 상황에서 사람을 돌보는 것이 사실 더 쉽습니다.

    그래서 환자의 가정을 방문할 수 있는 자유가 더 생긴다는 겁니까?

    그럼요. 예를 들어 봅시다. 저는 신생아를 낳은 엄마를 방문하곤 하는데요. 가정방문을 하면 엄마와 아기를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만나게 됩니다. 차라도 한 잔 마시며 수유 같은 문제를 다루면 분위기가 훨씬 자유롭지요. 주말이라고 해도 아기가 아프면 엄마를 방문하기도 하고, 환자들이 어느 정도 나이가 들었다 싶으면 아예 진료실에서 만나기 보다는 가정방문을 갑니다. 물론 진료실에서 보는 것이 훨씬 쉽지만요. 가정을 방문할 때 관심을 더 보여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밀턴: 가정방문을 할 때 환자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웁니다. 환자와 가족의 관계나 이웃이 뒷받침이 되는지, 집이 지저분한 지, 아니면 너무 지나치게 깨끗한 건 아닌지 같은 거 말입니다.

    모니카: 만약 환자가 응급실이나 전문의를 봐야 한다면 우리도 동행할 때가 자주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환자의 대변인 노릇을 하지요. 이럴 때, 대부분의 전문의들은 환자가 자기 의사를 데리고 온 걸 보고 놀라곤 하지만 대체로 감사해 합니다. 진료가 제대로 진행될 것이 분명하거든요.

    Monika Mommsen with a mother and newborn

    모니카 맘슨과 산모, 신생아

    기술과 의학

    두 분이 의사로 활동한 지난 몇 십년 동안 많은 연구자들이 기술의 대단한 업적을 이루었습니다. 인공수정에서부터 실험적인 암 치료제, 몇 년이라도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생명유지 장치처럼 말입니다. 의학의 기술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밀턴: 올바로 사용을 한다면야 수많은 신과학기술의 발전은 대단한 축복입니다. 그러나 너무나 아쉽게도 과학기술이 환자에게 최우선을 두기보다는 돈에 예속되어 있다는 겁니다. 의사가 지성적인 직업으로 여겨질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너무나 드러내놓고 뻔뻔스럽게 비즈니스입네 합니다. 물질을 쫓는 맘몬이 이제 의료보호 사업을 위아래로 장악하고 있습니다. (제약회사 문제는 언급하지도 않으렵니다.) 그래서 의사들이 환자 치료와는 상관없는 검사를 막무가내로 시키는 겁니다. 의료보험이 대수술과 비싼 약을 지불한다고 칩시다. 그러나 한 노인에게 정말 필요한 건 이런 극단적인 참견이 아니라 일상적인 보살핌입니다.

    약을 사용하면서 하나님께 치유해달라고 하는 건 전혀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기술을 사용하는 요인 중 하나로, 환자를 치료함으로써 “질병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려는 의사의 강한 의지를 들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런 의지는 우리가 누군가를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동기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또한 이런 성공에 대한 의지가 환자를 돌보는 것보다 더 중요해서 의사가 해로운 결정을 내리게 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3년 전 제 며느리는 암으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자신을 치료했던 종양 전문의를 마지막으로 방문했을 때, 그녀는 갑자기 “당신에게 제가 더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하며 퉁명스럽게 말을 던지는 겁니다. 그 전문의는 더 이상 성과를 얻을 수 없는 걸 깨닫고 환자를 돌보는 일을 중단했던 거예요. 며느리와 아들은 정말 상처를 받고 나와야 했습니다.  

    환자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참 많습니다. 저는 공동체에서 진료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일찌감치 배웠습니다. 어느 날 한 엄마가 고열에 시달리는 아이를 데려왔어요. 아이를 살펴봤는데 모든 것이 괜찮았습니다. 그저 바이러스 감염일 뿐이었고 아이는 위험한 고비를 넘긴 상태였기에 아이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항생제는 쓸 필요가 없습니다. 제가 더 이상 할 일이 없네요.”

    그런데 그 엄마가 허리에 손을 딱 걸치고는 저를 노려보며 소리를 치는 겁니다. “의대에서 고작 배운 게 그거예요? 이 아이에게 필요한 건 아스피린 한 알, 주스 한잔이라도 권하는 사랑이라구요. 그러니 더 이상 할 일이 없다는 말은 하지 마세요!” 그 엄마 말이 옳았습니다. 우리는 늘 병을 낫게 할 수는 없지만 병자를 돌볼 수는 있지요.

    모니카: 기술은 우리가 무언가를 통제하고 있다는 환상을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우리는 모든 것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예를 들어, 저는 임신하는 데 문제가 있는 여성을 돕는 것을 전적으로 찬성하지만 그 역시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원치도 않는 냉동 배아를 과잉 생성하면서 체외 수정을 사용하는 것이 과연 옳을까요? 제가 분명히 감사해하는 수많은 의료 기술이 있습니다. 하지만 물러서야만 할 때도 있는 겁니다.

    기술에 초점을 맞춘 의학 접근법은 또한 환자와 의사의 관계를 방해합니다. 저는 최근에 안과 의사를 찾아갔는데 저를 두 번 쳐다보고는 대부분의 시간을 컴퓨터와 보내더군요. 우리는 환자를 만지는 것 같은 귀중한 검사의 가치를 잃고 있습니다.

    밀턴: 스탠포드 대학의 내과 교수인 아브라함 베퀴즈는 병원 환자가 된 자신의 체험을 최근 뉴욕 타임즈 매거진 기사에서 다루었습니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모니터와 실험실 보고서, 영상 촬영에 완전히 몰두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겁니다. 그는 진료는 받았지만 돌봄을 받은 느낌은 못 받았다고 했습니다.

    모니카: 죽어가니까 사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임종의 순간이라 할 지라도 그들이 고통스러워 한다면 만져보며 진찰을 해보세요. 저는 이 중요성을 제 언니로부터 배웠습니다. 언니는 전이성 암으로 몇 년 전에 죽었습니다. 제가 진찰했을 때, 언니는 제가 자신의 말에 잘 귀 기울이는 걸 알게 되면서 자신의 걱정이 괜한 것이 아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솔직하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언니, 암이 자라고 있어.”

    의학과 신앙

    어떤 기독교인들은 의학에 대한 신뢰와 기도의 응답을 믿는 것이 상충된다고 느끼기도 하는데요. 두 분은 이 두 가지가 충돌한다고 보십니까?

    모니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이 둘은 늘 함께 가야만 합니다. 저는 진료 전에 자주 기도를 하는 편입니다. 특별히 제가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는 어려운 상황을 앞두고, 제 좌절이 드러나기 보다는 인내와 사랑으로 대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저와 환자를 위해 마음의 평화를 허락해달라고 드리는 기도입니다.

    밀턴: 의료기술을 사용하는 것과 하나님께 치유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 사이에 절대로 어떤 충돌이 있을 수 없습니다. 주기도문을 보면 매일의 양식을 간구하라고 하셨지 않습니까? 우리가 음식을 위해 기도한다고 곡식 심는 것을  그만 두거나 식탁에 올릴 음식을 만들지 못하게 하는 건 아니잖아요. 우리는 기도와 행동을 함께 병행해야 합니다.

    육체적, 감정적, 심지어 영적인 요소는 어떻게 질병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십니까?

    밀턴: 글쎄요. 모든 병이나 건강에 대한 불만은 질문 대로 영적 감정적 심리학적 측면에서 볼 수 있을 겁니다. 두통이나 천식, 또는 암같이 아주 심각한 증세도 말입니다. 병에 대한 태도는 정말 중요한 영향을 미칩니다. 물론 의학적인 도움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할지라도 우리는 내면, 감정, 영적인 측면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모니카: 만성두통이나 만성통증은 검사를 아무리 해봐도 정상으로 나오는 경우에 해당됩니다. 저희도 속수무책이어서 약 처방도 제대로 못합니다. 그때 우리는 환자들을 불신하거나 꼬리표를 붙이기보다는 다른 식으로 도울 방법은 없는 지 찾아야 합니다. 이들이 통증을 받아 들이고 사는 방법을 배워야 하는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우리는 이들 곁을 지키며 신뢰를 보내야 합니다. 사실 이들의 고통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통증을 없앨 수는 없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삶의 일부가 되는 거지요.

    물론 정신질환의 경우 의학적으로만 접근할 수는 없습니다. 제 환자 중에 거식증에 걸린 젊은 여성이 있었어요. 분명히 의학적인 문제가 있어 치료가 필요했지요. 그러나 결국 제가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중요한 것은 당신을 믿는다는 말이었어요. 병을 이기기 위해서 스스로 결심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누구도 대신 해줄 수 없다, 당신이 해야 된다!” 결국 그녀는 마음을 굳혔고, 건강이 호전되는 길이 열렸습니다.

    삶과 병을 보는 태도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통증을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특별히 나이가 들수록 우리 삶의 일부가 되는 거지요.

    인생의 마지막을 앞둔 이들에게

    죽음을 앞둔 분들을 많이 돌보고 계시는데요. 살 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걸 어떻게 환자들에게 알리십니까?

    밀턴: 무엇보다도 정직하고 열린 태도가 필요합니다. 절대로 환자에게 거짓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모니카: 사실 우리는 진단에 앞서 처음부터 정직한 대화를 하려 합니다. 환자들이 70이나 75세가 되었을 때 정기검진을 받으러 오는데요. 그때 인생의 말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요. 저는 이렇게 묻습니다. “여러분의 원하는 바를 당신의 배우자나 식구들과 나눈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갑작스런 중풍이나 심장 마비로 의사소통이 불가능할 경우, 우리가 당신을 어떻게 돌봐야 할지 생각해봤습니까? 이럴 경우 병원 치료를 원하는지, 아니면 집에서 평안히 돌봄을 받길 원하는지 생각한 것이 있는지요? 본인의 건강관리를 대변할 사람을 고려해봤습니까?” 이 대화는 인생에 대한 의미 있는 나눔으로 나아가지요. 대부분은 이런 생각을 해 본적이 없거나 아예 말하기조차 꺼리지요. 그래서 이런 대화는 환자에게 그런 생각을 할 기회를 열어줍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암 같이 심각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 말기 진단을 받았을 때, 우리는 환자와 가족, 목회자를 만납니다. 이 때에는 밀턴이 말씀하신 것처럼 정직한 태도가 참 중요합니다. 이 정직함은 죽음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아주 중요합니다. 물론 저희는 환자가 언제 죽을지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예측을 내릴 때에는 겸손해 질 수 밖에 없지요. 그러나 죽음이 닥친 것이 명확할 때는 가족에게 공개적으로 알립니다. 보통 가족들은 몇 시간이나 며칠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하거든요.

    십이 년 전에 한 노부부가 계셨는데 남편 분이 확실히 중풍을 맞은 것처럼 보였고, 매우 불안정한 상태였습니다. 더 이상 대화가 불가능했으니까요. 그래서 그 부인과 마주 앉아 말했지요. 당신 남편이 곧 죽을 것 같다고 말입니다. 그 부인은 큰 충격을 받았는데 이런 말을 하는 거예요. “정말 너무 고맙습니다. 이렇게 금방 죽을 거라고 상상도 못했는데 이제 매 순간을 남편과 보내겠어요.” 남편 분은 일주일 후에 돌아가셨지요.

    밀턴: 의사들은 실험 결과나 데이터, 보고서와 진찰, 전화와 일정, 요법과 약물복용량을 재는 일에 휩쓸리기 마련입니다. 그러면서 정작 환자와 배우자에게 “당신 부인(남편)이 죽을 겁니다!” 말하는 걸 잊어 버리지요.

    Milton Zimmerman with a longtime friend and patient

    오래된 친구이자 환자와 함께한 밀턴

    통증완화 치료는 언제 하십니까?

    밀턴: 매 경우마다 다릅니다. 저희는 환자와 함께 기도하면서 상황을 판단하려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이렇게 힘든 치료를 얼마 동안 지속해야 하는지, 더 좋은 선택이 있지를 고려하지요. 그러나 어느 순간이 되면 주치의는 환자가 제대로 된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치료라는 것이 환자에게 오히려 해가 된다면 중단하자고 해야 합니다. 물론 환자가 결정해야 하지만 환자에게 적당한 정보를 주는 것은 의사의 몫입니다.

    제 이웃들이 병원에서 도움도 안 되는, 쓸모 없는 온갖 치료를 받을 때마다 죽기 직전에 불필요한 고통에 시달리는 분들이 참 안쓰럽습니다. 이런 경우에 의료 산업의 수익 논리라는 것이 얼마나 관여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차마 믿고 싶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절망적인 치료가 돈을 만들어내는 것이 사실입니다.

    모니카: 소위 ‘포기한 환자’에게 통증완화 치료를 한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반대로 최근 연구 결과에 의하면 통증완화 치료를 선택한 암환자들이 항암 화학요법을 받은 환자보다 더 오래 잘 산다고 합니다. 그래도 환자가 화학요법이나 수술을 하자고 한다면 저는 공정하게 지지를 보낼 겁니다.

    모든 걸 의학적 관점으로 볼 것이 아니라 사람을 온전하게 보는 법을 배우십시오.

    결국 신약성경에도 나오듯이 죽음은 최후의 적입니다. 우리 모두 언젠가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 순간이 왔을 때 절대로 중요한 것은 환자를 에워 싼 평화로운 분위기입니다. 환자와 돌보는 사람 사이에, 환자의 가족 사이에, 그들을 둘러 싸고 있는 공동체 내에 평화가 있어야 합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이 인생을 풍성히 살았다면 이별의 순간이 힘들지언정 정말 대단한 경험입니다. 

    밀턴: 정말 그렇습니다. 그런 순간 앞에 서면 나의 삶, 나의 사랑, 예수님에 대한 나의 사랑이 커지지요. 저는 폐암으로 죽은 환자를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그분이 마지막 날 새벽에 창 밖을 봤는데 샛별인 금성을 보셨던 모양입니다. 그분의 아들과 제가 별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샛별 좀 보세요. 오늘은 정말 유난히 빛나네요!” 그렇게 그분은 위를 보다가, 웃음을 띠며 돌아가셨습니다.

    a girl in a pink dress with a bamboo fishing pole by a pond

    쟁기출판이 브루더호프 출판사라는 걸 아세요? 백 주년 기념집(영문)에서 만나요.

    좋은 의사가 되는 법

    의사 일을 하면서 어떻게 변해 오셨습니까?

    밀턴: 저는 사랑으로 봉사하는 이들을 포용하고, 전문가적인 모든 이상과 인도주의적 윤리를 초월하도록 배워왔습니다. 너무 자주 직업의식-전문성을 외교적 수완으로 여기는 것 같습니다. 외교란 아주 예의 바르게 거짓말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거든요. 전문성이라는 것도 환자를 사랑할지라도 비슷한 태도로 돌보는 겁니다. 아니, 생각해 보세요. 그들을 정말 사랑한다면 전문적인 기준을 충족시키는데 그치지 말고 그걸 뛰어넘어야 하는 거예요.  

    모니카: 동의합니다. 제가 의학 공부를 시작했을 때 아버지께서 제게 편지를 보내셨어요. 제 공부는 철저한 봉사가 되어야 하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듯이 그런 겸손함을 가져야 한다, 의사가 된다는 것은 자신의 자아와 아무 상관이 없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환자에게 귀 기울이는 건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제 환자들로부터 정신질환에 대해 정말 많은 것을 배웁니다. 우울증으로 고통을 받는 것은 정말 어떤 건지 듣는 겁니다. 조울증을 앓고 있는 40대 여성이었는데 그녀가 느끼는 것이란 교과서에서 말하는 것 이상이었습니다.

    저는 첫 진료 때마다 더 많은 시간을 귀 기울이는데 사용합니다. 그들의 입장이 되려고 노력도 해보고요. 재빨리 판단하려고 하지 마세요. 환자들을 신뢰하십시오. 그(그녀)가 말하는 것이나 원하는 바를 믿어 보세요. 비롯 이들에게 필요한 건 의학적인 도움이 아닐지라도 말입니다.

    오늘날 의사가 되려 하는 의과대학생들에게 어떤 충고를 하시겠습니까?

    밀턴: 환자들에게 배우십시오. 65년 전, 제가 의과대학 2학년 때 들은 이야기입니다. “환자들과 병동에서 최대한 시간을 보내라. 교과서 보는 데만 온통 시간을 할애하지 말라.” 여전히 유용한 말인데 이제는 잊혀진 교훈이 됐어요.

    우리 의사들은 이미 하나님이 치유하시는 과정을 도울 뿐입니다.

    두 번째로, 신앙으로 의술을 펼치는 일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신앙이 없는 상태에서 의학을 펼치는 것보다 더 큰 치료의 가능성이 열립니다. 그러니 교과 공부만큼 믿음을 갖고, 기도하고, 성경연구에 힘쓰십시오. 당신과 환자 사이에 기술이 장벽이 되지 않도록 하십시오. 가족과 목회자, 교회와 함께 일하십시오. 교회 공동체는 정말 훌륭한 사회적 지지망이 될 수 있거든요.

    모니카: 겸손함이 참 중요합니다. 의과대학을 졸업할 때, 여러분은 젊고 의기로 충천할 것입니다. 그러나 자만함으로 마냥 들떠 있을 수도 있습니다. 특별히 아주 좋은 학점으로 마쳤다면 말입니다. 그런 교만의 때를 벗어야 합니다. 겸손함이야말로 연민을 자아내기 때문입니다. 환자를 본다는 건 단순한 의학적 문제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온전하게 보는 것입니다. 의학적 측면으로 보기 보다는 한 사람으로 대할 때 더 많은 것-영혼과 정신, 가족의 온전한 사회적 측면을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즐겁게 일하십시오! 어떤 사람이 만성통증으로 왔다고 칩시다. 여러분은 우선 환자를 믿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나서 재치와 웃음으로 대하십시오. 그 사람이 여러분의 진료실을 떠날 때는 용기를 얻어야 됩니다. 만성 정신질환으로 고생하던 어떤 여성 환자가 있었는데, 그분과의 진료 시간이 오기 전에 저는 한가지 목표를 잡았어요. 한 번은 꼭 같이 웃자고 말입니다. 또 다른 예는 제 이웃에 살던 치매 노인입니다. 늘 볼 수밖에 없는 처지였는데, 그분이 불안한 상태에 있을 때마다 뭔가 웃음거리를 찾곤 했어요. 그런데 그 웃음이 벽에 막힌 듯한 상황에서 돌파구가 되지 뭐예요.

    의술을 펼치는 건 정말 대단한 특권입니다. 누군가의 삶에 개입해서 동행한다는 건, 혹시 성직자 외에는 할 수 없는 일 아닌가요? 이 일을 하면 할수록 정말 애정을 갖게 됩니다. 제 일을 지원하는 공동체에서 지난 세월 동안 의사로 일할 수 있었던 것이 큰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밀턴: 누군가를 돌본다는 건, 하나님이 이미 치유하시는 과정에서 의사로서 돕고 있다는 겁니다. 이것을 안다면 우리가 일하는 태도가 바뀔 거예요. 이것이야말로 의학을 가치있게 만드는 겁니다.


    인터뷰 진행: 피터 맘슨. 2018년 5월 22일

    지은이

    의사 밀턴 짐머만과 모니카 맘슨은 뉴욕 주 리프톤 시의 우드크레스트 브루더호프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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