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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키우는 일은 성가신 짐이 아닙니다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

May 2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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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무자녀’ 운동을 벌이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신념을 아무리 강요해도, 여전히 아이를 갖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고 좋은 일이며 자연스러운 일이다. 부모 역할을 감당하기 어려운 재정상의 위험이나 성가신 짐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전문가에게 맡겨야 하는 일로 간주해서도 안 된다. 아이들에 대한 진심 어린 사랑과 어떠한 희생도 감수하려는 의지가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희생을 감내하지 않고 어떻게 인생이 무엇인지 경험하여 알 수 있겠는가?

물론 기꺼이 이러한 희생을 감수하고, 어려운 환경에서 일하고, 작은 보상에 만족하며 위험한 일을 마다하지 않는 이가 숱하게 많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이들이 위험천만한 세상에서 연약한 아이들을 보호하는 일을 버거워할 것으로 지레짐작한다. 그러나 최근에 내가 만난 젊은 경찰관은 우리의 짐작이 틀렸다고 딱 잘라 말했다.

여러 지역 경찰 기관의 담당 목사로 섬기는 덕분에 지역 주민을 위해 봉사하는 이들을 만날 기회가 자주 있다. 그중에 마크라는 경찰관이 있었다. 그는 유력한 용의자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폭력 사태에 휘말린 적이 있다. 사건이 있고 나와 상담하면서 마크는 그 일로 충격을 받아 많은 생각을 했노라고 했다. 약혼자 리타와 함께 삶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았고, 그 결과 예정보다 결혼을 1년 앞당기기로 했다. 나는 두 사람의 결혼식에 참석해 축복 기도를 했고 두 사람에게 아들이 태어났을 때도 축복 기도를 하는 영광을 누렸다. 마크는 부모의 역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늘 아이를 원했지만 아이의 미래가 마음에 많이 걸렸어요. 혹시나 이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즐겁게 자라지 못하고 공포 속에서 살지는 않을까? 미래에 아이들의 생존율은 얼마나 될까? 하지만 아이들이 바른 도덕과 태도를 배우도록 양육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임을 깨달았습니다. ‘미래의 용사’로 키우는 거지요. 원하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지 없을지는 우리가 아이들을 어떻게 기르느냐에 달려 있으니까요. 제가 우리 사회의 미래에 기여하는 길은 자식에게 옳고 그름을 분별할 줄 아는 가치관을 가르치는 게 아닐까요? 끔찍하게 변하는 세상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영원히 머무는 건 아니잖아요. 다음 세대에 넘겨주려고 애쓰지 않으면 여기서 끝나고 마는 것이죠. 저는 할아버지에게 많은 걸 배웠습니다. 제가 배운 삶의 교훈이 저의 세대에서 끝나버린 걸 할아버지가 아시면 몹시 화를 내실 겁니다. 그 가치관을 다음 세대에 전할 수 있어서 안심입니다. 저의 아들이 제게 물려받은 것을 다시 자기 아이에게 전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부모가 되는 것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쉬운 길이 계속되는 건 아니지만 마냥 고된 것만도 아닙니다. 정성을 쏟은 만큼 보상도 따르지요. 저녁에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거나 하고 싶은 일을 못할 때 느끼는 ‘괴로움’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한 보상이에요. 이 세상 어디에 아이를 껴안을 때 느끼는 감동을 대신 할 것이 있나요? 아이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나를 통해 이 아이가 세상에 나왔다는 사실을 실감합니다. 세상을 탐색하는 아이의 눈을 바라볼 때 받는 느낌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 해 동안 제 안에 갇혀 있던 것이 풀려나는 기분이에요. 아이처럼 노는 법을 다시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매일 거친 현실과 싸우고 밤에 집에 돌아와 자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노라면 이 세상도 그럭저럭 괜찮아 보여요.

회의론자들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있고 두 사람 다 직업이 있을 때에만 아이를 낳는 것을 환영할 수 있다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런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마크와 똑같은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가정 간호사로 일하면서 혼자 딸을 기른 리사는 이렇게 말했다.

친구들이 어떻게 혼자서 아이를 길러냈느냐고 물을 때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힘들기는 했지요. 뭐라도 먹을 게 생기면 그때그때 먹어둬야 했어요. 그런 일이 하루에 한 번일 때도 있었지요. 딸아이와 고장난 전기난로 앞에 매트리스 하나를 깔고 잔 날도 있어요. 이제 열아홉 살이 된 딸아이는 그날의 일을 다르게 기억할지도 몰라요. 아무튼, 그때 얼마나 웃었는지. 하도 웃다가 난로를 걷어차기도 하고 서로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울기도 했어요. 당연히 아이 아빠가 곁에 있었으면 했지요. 저도 그러길 기도했지만,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어요. 그런데 제가 딸아이 없이 이 세상에서 뭘 할 수 있었을까요? 혼자서는 견뎌내지 못했을 거예요. 딸아이가 없는 세상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요.

모든 아이에게 리사처럼 용감하고 기략이 풍부한 엄마가 있는 건 아니다. 모든 아이가 마크의 아들처럼 굳세고 강인한 부모가 있는 안정된 가정에서 자라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마음은 모두 어린아이다. 그것은 유년기의 특권을 빼앗긴 아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그중에는 학대를 받거나 중독에 빠진 부모에게 시달리거나 붕괴된 가정에서 상처를 입은 아이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은 아이도 여전히 희망을 품고 당신을 보며 묻는다. “제 손을 잡아주실 수 있나요? 이 세상에 제가 있어야 할 곳은 어디죠?” 인생을 살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모든 아이에게는 저마다 사연이 있고, 그 사연을 부모나 신뢰할 수 있는 교사나 상담가가 시간을 내서 들어주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매일 새로운 아기가 태어난다. 그리고 타고르가 말한 것처럼 각각의 아이는 ‘하나님이 인류를 향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으셨다는 새로운 메시지’를 안고 온다. 신비로운 생각인 동시에 도전이 되는 말이다. 창조주가 우리 인류에게 희망을 잃지 않았는데, 우리가 어떻게 절망할 수 있단 말인가?


이 글은 《아이들의 이름은 오늘입니다》(포이에마)에서 인용했습니다.

boy holding monarch butterfly
지은이 Johann Christoph Arnold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

저자는 결혼, 부모역할, 교육, 노년 등을 주제로 활발한 저작, 강연 활동을 했으며, 기독교 공동체 브루더호프에서 목사로 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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