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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 자녀 양육의 기술

    신체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요? 세계 여러 나라의 여섯 명 어머니들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 모린 스윙어

    2022년 01월 19일 수요일

    다른 언어들: Deutsch, español, Eng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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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이 외출을 좀 하면 좋겠어요. 모닥불을 피우든지 아무거라도 좀 같이 해 줄래요? 아내에게 웃을 일이 필요해요." 올해 들어 네 번째로 병원에 입원한 아들 로버트를 돌보던 루엘이 내게 보낸 문자였다. "알겠어요!" 나는 재빨리 답신을 보냈다. 친구랑 노는 건 식은죽 먹기다. 우리는 모닥불을 피우고, 실컷 웃고, 또 (루엘이나 나도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알았지만) 반항하듯이 일부러 진 토닉의 양을 늘려 마시며 함께 울기도 했다.  

    사람은 가끔 두려움과 불확실성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가 있다. 생각나는 모든 기도를 다 해도 내 아이는 여전히 위태한 상태로 중환자실에 누워 있을 수 있다. 로버트는 뇌성마비를 앓고 있고, 태어난 후 7년 내내 여러 합병증을 겪고 있다. 매일 매시간 이 아름다운 소년의 엄마가 된다는 게 어떤 것인지 나는 잘 모른다. 나는 의사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길게, 31년을 살았던 나의 멋진 동생을 돌볼 줄 아는 누나였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동생을 사랑했어도 누나 역할이 엄마 역할과 같을 순 없다.
    내 남동생 드웨인을 몹시도 자랑스러워하고 사랑하셨던 우리 엄마 멘자를 생각해본다. 동생이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매일 그의 사진을 쳐다보며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이 애의 엄마였지.” 우리 엄마는 로버트의 명예 할머니이고, 우리 마을 장애인들의 대변자이기도 하다. "물론 힘든 일이지." 엄마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사람들이 예상하는 것과는 다른 어려움이야.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멋진 일이지. 나는 고통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안타까워. 그러면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 끝내 모를 수 있거든."
    나는 어떻게 삶을 살아내야 할지를 아는 세계의 몇 엄마들에게 '장애인을 환영하지 않는 세상에서 어떻게 아이가 장애를 극복하도록 돕고 있습니까?'라고 물어보았다. 여기 그들이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가 있다.

    진, 로버트의 어머니
    뉴욕, 몽고메리

    로버트의 머리카락은 그의 투지와 잘 어울리는 붉은 색이에요.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숨 쉬고, 먹고, 움직이고, 체온을 유지하고, 잠을 자는 게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로버트에겐 그 모든 게 싸움이죠. 죄 없는 아이의 고통을 보는 게 가장 힘들어요. 어머니에게 그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마음에 꽂힌 칼 같은 거예요. 하지만 로버트가 미소를 지을 때면 나는 뭔가 깊고도 아름다운 것에 닿은 것만 같아요. 육체적으로 로버트는 매일 매순간 도움이 필요해요. 하지만 영적으로는 우리 자신이 '필요한 존재'이자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해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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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사진은 가족이 제공하였습니다.

    주변에 장애를 지닌 이가 없는 사람들은 심각한 장애를 가진 아이를 돌보는 그날 그날의 수고를 감히 상상하지 못할거예요. 어떤 날은 내가 아이를 위해 이 지구라도 돌돌 말아 치울 능력있는 거인처럼 느껴지는가 하면, 또 어떤 날은 잠자리에서 일어나기 위해 내가 나 자신을 응원하는 연설을 해야만 하죠.
    그뿐 아니라 로버트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거듭해서 내려야하는 대가를 치러야 해요. 아이의 치료 계획에 관해서, 또는 아이를 행사에 데려 갈지 말지 남편과 의견이 불일치할 때 무척 힘들어요. 남편도 나도 아이를 열렬히 사랑하다보니 아이가 아프거나 의학적인 개입이 필요할 때는 긴장이 고조되고 사소한 것들에 폭발하기도 해요. 우리 부부는 위기에 대처하는 방식이 서로 다르고, 거칠게 상처를 주기도 해요. 하지만 협력하고 용서하는 법 또한 배우고 있어요.

    로버트는 우리를 아무런 답이 없는 곳으로 데려가요. 자기가 손대는 사람들이 사랑을 느끼도록 허락해주고요.

    로버트는 우리가 단 오늘 하루에만 충실하도록 만들어요. 사실 이 방법만이 우리의 상황을 지속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현실적 방법이자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 예수님의 명령이기도 해요. 세계적인 위기가 발생하거나 성격 갈등, 가족의 어려움이 생겨도 아랑곳없이 로버트는 늘 똑같은 보살핌이 필요하고, 사실 그 때문에 놀랍게도 자유로워지고 보람을 느껴요. 어린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잔치나 생일 파티, 캠핑, 크리스마스 같은 것들을 보통 아이들처럼 대하지 않는 로버트를 보면 안쓰러워요. 나는 로버트 옆에 모여들어서 로버트가 좋아하는 식으로 축하해주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에 진심으로 감사해요.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결코 해결될 수 없지만 이 고통에 함께 해 주는 친구들이 최고의 버팀목이예요. 이 친구들은 종종 자신들의 십자가도 용감하게 지고 가는 사람들이죠. 가끔은 "나하고 함께 걷는 동안 아무 말도 말아주세요 "라는 팻말을 달고 싶을 때도 있어요. 그렇지만 우리를 도와주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아무도 없는 것보다 나아요. 나는 오히려 우리 기분을 상하게 할까 봐 모르는 척 하는 것보다 관심이 있기 때문에 ‘잘못된’ 말이라도 하는 사람들을 원해요.
    로버트가 태어난 지 몇 개월밖에 안돼서 여전히 충격으로 헤매고 있을 때 우리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던 한 엄마 바바라를 만났어요. 그 집 아이는 저희 아이보다는 나이가 많았는데 바바라는 확고한 믿음과 따뜻함으로 나를 이렇게 환영해 주었어요. “진, 넌 이제 아주 멋진 여행을 시작하게 될 거야. 네 아들의 영혼은 언제나 자유로와! 고통스럽고 힘들겠지만 다른 엄마들이 자기 자녀들의 영혼 때문에 아파할 때, 네 아들은 거기에서 자유롭다는 것을 알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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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버트는 자신의 연약함으로 인간의 뒤엉킨 견해와 계획을 단번에 풀어버려요. 그러고는 답이 없는 곳으로 우리를 데려가요. 자신의 손길이 닿는 사람들이 사랑을 느끼도록 허락해 주고요. 그렇게 해서 로버트의 형제들이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꿔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성공이란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하는 것들을요.

    버키, 세바스찬의 어머니
    뉴욕, 월든

    세바스챤은 재미있고, 배려심이 많은 사랑스런 아이예요. 세발 자전거 타기와 수영, 자동차 타는 것을 아주 즐거워해요. 음악을 사랑하고 자기 식대로 노래 부르는 것을 너무너무 좋아하죠! 세바스챤은 태중에서 23주 때 450g의 몸무게로 태어났어요. 휠체어를 타고, 한쪽 눈은 시력이 없고, IQ는 낮아요. 세바스챤은 내 마음을 기쁨으로 꽉 채워 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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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바스챤이 태어나기 전에 의사들은 아이가 오래 살지 못할 수도 있다면서 낙태를 하는 것이 더 나을 거라고 했어요. 마치 세바스챤이 인생의 기쁨을 누리지 못할 것처럼 말이죠. 정반대예요. 우리는 모든 게 더욱 부요해요. 사람들은 종종 이런 어려움이 없는 다른 가족들보다 우리 가족의 삶이 훨씬 열악한 것처럼 불쌍히 여겨요. 그럴까요? 우리가 겪는 도전은 다른 것일 뿐, 더 나쁜 게 아니에요. 다른 아이들은 자신의 삶이나 자기 가족에게 상처를 주는 끔찍한 결정을 내릴 수 있지요. 세바스챤은 16년 동안 우리에게 사랑만 줬어요.

    조, 모이 모이의 어머니
    인도, 데라둔

    히말라야의 한 외딴 마을에 모이 모이의 가족이 살았어요. 모이 모이의 생모는 열두 번째 아기를 출산한 후에 불임수술을 했는데도 모이 모이가 잉태되었어요. 낙태를 결심한 어머니는 데라둔이라는 도시로 내려와 산부인과 의사를 선택했는데 그는 낙태시술을 하지 않는 의사였어요. 모이 모이의 어머니는 아기를 낳기로 결정했지요.
    몇 달 후, 정기 산전 진료를 받으러 타고 가던 버스 안에서 격렬한 산고가 시작됐고, 모이 모이는 길가에 정차한 버스에서 태어났어요. 12주나 이른 출생에 몸무게는 900g 이었어요. 모이 모이의 어머니는 아기를 숄에 싸서 병원으로 데려갔고, 의사는 자신의 여동생이 아기를 입양할 거라고 얘기해 줬어요. 그 여동생이 바로 저예요. 그리고 그 아기는 기적같이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우리 삶에 들어와 모든 것을 바꿔 놓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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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이 모이는 잉태될 운명이 아니었지만 잉태되었고, 태어날 운명이 아니었지만 태어났어요. 살 운명이 아니었지만 생존했고, 우리 딸이 될 운명이 아니었지만, 분명코 우리 딸이 되었어요.
    입양 초보 엄마로서 당황하고 어리둥절하던 과거의 나 자신에게 내가 조언을 줄 수 있었다면 이렇게 말했을 거예요. "네가 지금은 깨닫지 못하지만 모이 모이의 장애는 네가 상상도 못했던 새로운 삶으로 가는 티켓이 될 거야. 지구상에서 가장 놀라운 사람들에게 너를 소개할 것이고, 너는 보다 크게 웃으며, 더 큰 꿈을 꾸고, 네가 가능하리라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깊은 배려를 하게 될 거야. 야망과 개인적인 분투를 뛰어넘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가르쳐 줄 거야. 다른 방식의 삶을 모이 모이가 보여 줄 거야.”

    모이 모이는 태어날 운명이 아니었지만 태어났고, 살 운명이 아니었지만 생존했고, 우리 딸이 될 운명이 아니었지만, 분명코 우리 딸이 되었어요.

    세 살 된 당신의 ‘모이 모이’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거 같을 때, 어떤 권위있는 전문의는 ‘아무 이상 없으니 걱정할 것 하나도 없다’고 말할 거예요. 다른 의사는 ‘아이가 아홉 살쯤 되면 죽게 될 거다’라고 하겠지요. 의사들이 이런 증후나 유전적 장애에 대해 당신보다 더 많이 알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모이 모이'에 관한 세계 최고의 권위자는 바로 당신이에요. 당신만큼 '모이 모이'를 잘 아는 사람은 없지요.
    그렇더라도, 당신이 젊고 자립적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혼자 다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돼요. 그렇게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되지요. 당신에게나 '모이 모이'에게, 물론 다른 사람에게도 그건 좋은 일이 아니에요. 사람들은 당신이 부탁 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모이 모이'는 하루 내내 당신의 얼굴만 보는 걸 지루해 할 거에요. 모든 사람에게는 사회 생활이 필요하죠. 기대할 만한 것이 필요하고 재미있는 걸 좋아하는게 사실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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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변을 둘러보세요! 손을 내밀고 다가 가세요! 우리는 모르는 사람에게 무작정 걸어가서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모이 모이에게서 배웠어요.

    지니, 세라와 세린의 어머니
    대한민국, 강원도

    세라가 생후 9개월이 되어, 심한 경기를 할 때까지 저희는 우리 가정에 무슨 문제가 생길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세라의 검사 결과는 발달장애였습니다. 첫 아이였기에 저는 순진하게도 그저 치료를 꾸준히 하면 나아질 거라 믿었습니다. 세라가 18개월이 되었을 때 오전마다 뇌성마비복지관에 다녔어요. 창문 너머에 비친 세라는 표정도 움직임도 없었어요. 결국 저는 제가 일하고 있던 어린이집에 세라를 데리고 다녔어요. 갑자기 아이가 온 사방을 돌아다니기 시작했어요. 작은 다락방에서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온갖 가방을 어깨에 메고서 웃으며 기어 다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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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라가 두 살이 되었을 때, 동생 세준이가 태어났고, 세라는 아기 동생을 너무 사랑했고 행복해했어요. 세준이는 발달장애와는 거리가 먼 아이였지요. 우리 가족은 작지만, 큰 결심을 하게 됐는데 오랜 고심과 기도 끝에 영국의 브루더호프 공동체에 합류하기로 했습니다.
    한 해 뒤에, 셋째 세린이가 태어났어요. 세린이가 태어나자마자 우리는 아이에게 문제가 있다는 걸 바로 알아챘어요. 아무리 신생아라도 아기들은 꿈틀거리는 기운이 있는데 세린이는 빨고, 곧추서는 생명력이 부족했어요. 의학적으로도 분명치 않은, 우리 딸들에게 벌어진 일이 저희 부부에게는 큰 충격이었습니다. 다행히 공동체라는 삶 가운데에서 우리 딸들은 느리지만 행복했습니다. 물론 딸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충족시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고, 특별히 엄마인 저로서는 우아하게 체면을 생각하느라 도움을 받는 게 결코 달가운 일이 아니었지요. 활기찬 젊은 아가씨가 저희 가정을 도우러 왔을 때, 기꺼이 두 팔 벌려 환영할 수 있는 일이 제게는 자연스런 일이 아니었어요. 그녀에게 “어, 저희는 괜찮아요. 커피나 한 잔 하고 가요.”라고 하기보다 “어머, 어서 와요. 정말 고마워요.”라고 말하기까지 큰 은혜가 필요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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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라는 학교와 친구들을 너무 사랑했어요. 경기가 간질로 악화되고, 움직임도 자유롭지 않았지만 자신이 남과 다르다는 걸 모르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버스에서 만난 어떤 낯선 아이가 느닷없이 “너 장애인이니?”라고 물었대요. 그날 저녁, 세라도 대놓고 “엄마, 나 장애인이야?” 물어서 제 맘은 아팠습니다.
    세린이의 경우는 세라와 좀 더 달랐어요. 세라보다 더 많이 도와줘야 했어요. 말도 서너 단어로 구성된 한 문장 정도 할 수 있었는데 문제는 내용이 아니겠어요? “사랑해!” “왜 안 행복해?”(이런 말에 한 번 걸리면 당신이 행복을 되찾을 때까지 세린이한테서 헤어나기 어렵습니다. 당신의 행복이 곧 세린이의 행복의 척도 거든요.)
    이제 우리 아이들이 성인기에 들어서면서 저희 삶의 형태도 바뀌었어요. 세라와 세린이는 영국 다벨 공동체에서 살면서 돌봐주는 이들과 함께 지내고 있어요. 저와 남편 케빈, 시아버님과 막내아들 세루는 한국 강원도에 있는 작은 공동체에서 살고 있고, 큰 아들 세준이는 런던에서 물리치료 일을 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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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새로운 환경에서 살게 되면서 제가 깨달은 점이 있어요. 우리 가족이 늘 투닥거린다는 거예요. 물론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는 건 변함없지만 딸들의 선한 영향력이 정말 그립답니다. 저희 가족은 여태껏 어떤 갈등이 있어도 민감한 딸들을 위해 늘 평화로운 분위기를 추구해 왔거든요. 노래나 기도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나 조용한 시간을 통해서 평화에 이르렀어요.
    흠, 이제 딸들 없이 저녁식사에 모인 머리 큰 네 명을 보세요. 앉자마자 옥신각신하기 시작합니다. 어휴!

    헤드뷕, 패트릭의 어머니
    영국, 켄트

    패트릭의 미소는 개구져요. 웃을 땐 배꼽을 잡을 만큼 크게 웃고요, 어느 누구와도 얘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사실, 당신이 좋아하든 말든 패트릭과의 대화를 피할 수 없을 거예요. 다짜고짜 이렇게 물어볼 거예요. “아침밥으로 뭐 먹었어요? 어젯밤에 꿈 꾼 거 있어요?  오늘은 뭐 할 거예요?"
    패트릭이 태어났을 때, 염색체 이상으로 평생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 내게는 종종 긴장이 찾아와요. 죄책감과 슬픔이 교차하면서 상처가 드러나는데 그렇다고 순수한 아이를 두고 부끄러움이 드는 건 아니에요. 나는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고 싶지 않지만, 사실 폐를 끼치는 게 우리가 늘 하는 일인 것 같아요. 우리는 친구들과 이웃들, 전문의료진, 교사들의 도움에 의존하고 있어요. 어쨌든 우린 항상 도움이 필요하죠. 패트릭은 통증을 호소하는 일이 없지만, 아이가 고통을 겪는다는 걸 알기 때문에 저희에게 말할 수 없는 아픔이 있어요. 발목이 부러졌을 때도 울지 않았죠. 신음은 했지만 울지는 않았어요. 잘못 조정된 보조기 때문에 무릎 내부가 손상됐을 때도 계속 걸어 다녔어요. “무릎이 아파요”라는 말을 하지 못하고 그냥 모든 사람에게 화를 냈어요. 패트릭은 엄청나게 말을 많이 하지만 배고프다, 목마르다, 피곤하다, 춥다, 덥다, 아프다는 말을 하지 못해요. 어딘가에 우리가 찾을 수 없는 연결고리가 빠져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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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패트릭을 낳았고 내 아들이기 때문에 왠지 아이의 고통이 내 잘못이라고 느끼기도 해요. 내게 "그렇게 느끼지 마세요. 그건 사실이 아니에요."라고 하진 마세요. 늘 그렇진 않지만 가끔은 그렇게 느끼기 때문이니까요. 그래도 내 안에는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서슴지 않는 어미 사자가 들어 있어요. 패트릭에게 필요한 것을 사람들에게 이해시키고 아이가 꼭 그것을 얻을 수 있게 하는 그런 것 말이죠.
    사람들은 가령 이렇게 말해요. "물론이죠, 주말에 아무때나 1시간 정도 패트릭을 우리 집에 보내세요." 하지만 1년 동안 세 번을 조심스레 부탁해도 이루어지지 않을 땐, 두 번 다시 부탁하고 싶지 않게 되고, 부탁한 나 자신과 빈말로 제안했던 사람들에게 화가 나요. 하지만 진심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패트릭은 자신을 환영해 주는 곳을 알고 있어요! 지금 패트릭을 돌봐주고 있는 사람은 "이게 제가 꿈에 그리던 일이에요!" 라고 우리에게 말했는데 이전에는 아무도 그런 말을 한 사람이 없었죠.

    일부의 사람들은 선택적 낙태를 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우리는 가족 구성원을 선택하지는 않지요.  나는 결코 그럴 수 없었고, 오히려 이전보다 지금 더 그렇게 확신해요. 이제 14살이 된 패트릭은 나만큼 키가 크고, 아침을 든든히 먹는 것부터 샤워하는 것까지 패트릭이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일을 하게끔 만드는 데는 우리의 모든 힘과 창의력이 필요해요.  

    행복한 시간이 있냐구요?  그럼요. 패트릭은 꽤 똑똑하고 정말 웃기고 재미있는 아이예요.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끝없는 애정을 보이고, 여러 별명도 지어주죠. 하루는 방과후에 데리러 간 나를 보더니 거칠고 반쯤 갈라진 저음의 쉰 목소리로 이렇게 외치더군요. "사랑에 빠진 여인이여!"  그리곤  "내 마음 다해 엄마를 사랑해요!" 하면서 내 뼈가 으스러질 만큼 껴안고 쪽 하고 입맞춤을 해 주었어요.
    사실 패트릭이 얼마나 많이 이해하는지를 알고 놀라움을 금치 못할 때도 있어요. 자신의 몸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능력은 없지만, 다른 방식으로 의사를 소통할 수 있는 믿기 어려울 만큼 뛰어난 감각을 가지고 있어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매우 현실적으로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생생한 연결을 보여줄 때가 많아요.

    패트릭은 우리가 절대 상상도 못했던 방식으로 우리의 삶을 혼란 시켜요. 그리고 그 혼란을 환영하는 것이 우리 앞에 놓인 도전입니다.

    매년 부활절 때마다 패트릭은 일년 중 최악의 행동을 해 왔어요. 장난감을 부수고, 벽을 차고, 고함치며 불순종하고, 안경을 반으로 쪼개 버렸어요. 올해 성금요일에 우리는 마침내 그 이유를 깨달았어요. 우리 교회는 묘지 인근에 세 개의 십자가를 세워놓은 곳에 모여 예배를 드렸어요. 그리스도의 고문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읽는 동안 패트릭은 자기 손톱을 씹느라 이를 갈며 얌전히 앉아 있었고, 우리는 “거기 너 있었는가 그때에, 주님 그 십자가에 달릴 때” 노래를 불렀어요. 패트릭은 이후 며칠 동안 계속 혼자 이 노래를 불렀지만 평소와 다름없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노래를 부를 때는 참여하지 않았어요.
    그날 예배를 마친 후 우리는 예수님과 그분의 희생을 생각하며 묵상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 일을 쉬었어요. 저녁 식사 도중에 패트릭이 나를 돌아보며 말했어요. “엄마, 누가 묘지에 가서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내려 줄까요?”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패트릭이 그 자리에 있었어요.  그 일은 패트릭에게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었어요.
    패트릭은 우리가 절대 상상도 못했던 방식으로 우리의 삶을 혼란시켜요. 우리를 놀래키고, 기운을 북돋아 주는가 하면 고갈시키기도 하고, 몹시 화나게 하는 일을 계속 반복해요. 그리고 그 혼란을 환영하는 것이 우리 앞에 놓인 도전입니다.

    그레첸, 알랜의 어머니
    호주 뉴 사우스 웨일즈

    알랜에 대해 말해달라고 부탁해줘서 고마워요! 인쇄된 알랜의 이름을 보는 게 얼마나 기분 좋은지 여러분은 믿지 못할 거예요. 몇 주, 때로는 몇 달이 가도록 아무도 알랜 얘기를 하지 않거나 이름조차 말하지 않을 때면 나는 몹시 힘들어요. 마지막으로 알랜을 본 게 거의 2년 반이 지났는데 마치 영원처럼 느껴지는가 하면 알랜이 죽은 날이 바로 어제같기도 해요. 알랜에 대해 뭐라고 할지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았지만 매번 시간만 축났어요.  그래서 대신 편지를 써 보았어요:

    사랑하는 알랜에게,

    너에게 편지를 쓰려고 자리에 앉으니 마치 네가 내 팔꿈치 옆에 앉아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 만같은 묘한 기분이 들었어. 나는 직감적으로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았지. 너는 내 손에서 펜을 빼앗고 너랑 산책을 가거나 가족들과 차를 타러 나갈 때까지 내 손을 잡아 당겼을 거야. 이런 생각에 웃음이 나고, 모든 게 너무 현실같애. 이게 다 추억일 뿐이라 안타깝구나. 그래서 나는 아직도 펜을 잡은 채 여기 앉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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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넌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아기였어. 완벽했지. 의학계는 널 아주 다른 눈으로 봤지만 말이야. 그들이 본 건 비정상, 기형, 장애, 심각한 인지 및 성장 발달지연, 발작 장애뿐이었지. 가장 심했던 건 네가 몇 개월밖에 살 수 없다고 예측한 거였어. 고통에 시달리는 일은 너의 끝없는 동반자였고 여러 수술과 응급실 행, 숱한 불면의 밤과 발작 증세들. 내가 너의 고통을 없애 줄 수 있기를 얼마나 기도했는지 아니? 마음이 찢어 졌어.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 네 곁을 떠나지 않았고, 그 모든 것을 통해 너를 사랑했단다.
    완벽이란 완벽하게 작동하는 신체에 달려있는 게 아니야. 순수한 영혼과 정복할 수 없는 정신, 이것이 너의 완벽이었지. 짓궂은 유머 감각과 천상의 상냥함. 너는 네 동생들에게 가장 좋은 친구이자 영웅이었으며, 동생들이 존경하고 본받을 수 있는 누군가였어. 나는 네가 남긴 교훈을 우리가 완전히 흡수할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어. 무조건적인 사랑과 신뢰, 천진하고 연약했던 너는 큰 웃음과 쾌활을 선물로 주었지. 또 눈물과 웃음도. 네 생애 22년 동안 우리가 네게서 받았던 풍요였어.  고마워.

    완벽이란 완벽하게 작동하는 신체에 달려있는 게 아니야. 순수한 영혼과 정복할 수 없는 정신, 짓궂은 유머 감각과 천상의 상냥함, 이것이 너의 완벽이었어.

    네가 마지막 숨을 내쉬고 영혼이 자유케 되던 마지막 순간에 우리가 함께 있을 수 있었던 것은 특별한 선물이었어.  나는 그렇게 큰 슬픔이나 경이와 감사를 이전에는 결코 느껴본 일이 없었어.
    이제 너는 우리 곁을 떠나고 없구나. 아니면 지금도 우리 곁에 있는거니? 물론 나는 가끔 네가 멀리 있다고 느끼지만, 너의 일부가 우리 안에 살아 있다고 생각하고 네가 몹시 그립단다. 나는 항상 네가 지금 뭘 하고 있을까 상상하곤 해. 언젠가 알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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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편지를 어떻게 마무리 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엄마의 사랑을 표현하다 보니 말이 뒤죽박죽이야. 어쨌든 너는 내 손이 이렇게 오랫동안 펜을 잡고 있도록 놔 두진 않았을 거야. 너에게 말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지... 다른 모든 것이 다 실패했을 때나 필요했던 거였지. 거기에서 힌트를 얻어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한 번만 더 말할게. 너는 영원히 나와 우리 가족의 마음속에 남아있어.

    엄마가.

    지은이 MaureenSwinger 모린 스윙어

    모린 스윙어는 플라우 출판의 선임 편집자로 남편 제이슨과 세 자녀와 함께 뉴욕주 월든의 팍스 힐 브루더호프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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