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낸시에게,

할머니가 이제 팔십 줄에 들어섰다고 하는구나. 이쯤 되면 나이 좀 들었군 하는 소리를 들을 법도 한데, 나는 어찌 다른 점을 못 느끼겠어. 나이가 들어 몸이 안 움직이는 걸 부끄러워하지는 않으려고 해. 언젠가 많은 사람들 속에서 있는 너를 볼 기회가 있었단다. 이십 대를 갓 넘은 네 모습이 참 어른스럽더라.

구스타프 텐그렌의 빨간 모자 소녀

사람들은 친절하게도 “이제 나이가 드시는 가봅니다” 너스레를 떨지만, 네 앞날을 생각하면 내가 정말 다 늙었지 싶다. 네가 대학을 졸업하는 날까지 살아 있으리라 법도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너를 위해 할머니 생각을 적으려고 해. 편지가 두서 없더라도 늘 그랬듯이 이해해 주렴. 우리가 맺은 혈연 때문일까, 너희들에게 내 힘들었던 경험을 세대•공간•시간을 넘어 나눌 수 있으니 참 신기하기만 하구나. 물론 내 얘기가 네 상황에 꼭 맞는 것은 아닐 테지만 한가닥 진리라도 건졌으면 좋겠다.

영웅은 통큰 아량과 선한 마음으로 상을 받게 돼.

나는 늘 이야기꾼 노릇을 해왔어. 내 할머니를 닮은 것 같아. 이 할미는 동화의 가치를 굳건히 믿는단다. 그 이야기들은 대부분 선악의 싸움이고, 욕심과 야심에 빠져 돌덩이 같아진 인간 마음을 통찰하게 해주지. 부유하고 똑똑하고 강한 사람이 무지막지한 용을 물리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도움의 손길을 받기도 하고 줄 수도 있는 정직한 사람이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는다는 거야. 그런 가치를 찾는 것이 인생이야. 영웅은 통큰 아량과 선한 마음으로 상을 받게 돼. 그런 상을 받으려면 비전이 필요하단다. 용감하게 발을 내디디며 어려움을 참을 줄도 알아야겠지. 그리고 목표를 도달하도록 도와준 분들을 평생 친구로 삼으면서.

구스타프 텐그렌의 북쪽의 용

나도 동화 속 길동무들처럼 너와 함께 환희와 절망의 길을 걸어 왔다고 말하고 싶구나. 아, 네가 오해 받은 것 같다며 좌절할 때, 젊기에 불의라면 참지 못하며 예민해 할 때! 나는 그런 네 문제에 참견하지 않으려고 부쩍 애를 썼지. 이 할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너의 시련에 동화되는 것이요, 그 모든 혼란 속에 너의 영혼이 회복될 것이라 믿는 것이었다. 그리고 너의 그 소중한 정의감을 빈곤· 편견· 정치적 압박 속에서 고통받는 세상 사람들에게 펼치도록 돕는 것이었지. 나처럼 교사 생활을 했던 할아버지 안드레아스는 파라과이 정글에서 자라났어. 할아버지는 모든 학생들에게 가난하고, 위험에 처한 폭정에 시달리는 사람들과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심어주려고 애썼단다.

 할머니는 그동안 네 인격이 성장하고 자아를 발견하는 과정을 지켜봤어. 우리의 정체성은 종종 다른 사람들의 비판을 통해 위협을 받기도 하지. 그러나 완벽한 자기 관점이란 있을 수 없기에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객관적으로 보는 것을 자신을 향상하는 수단으로 봐야지 위협이나 파괴로 여겨서는 안 된다.

불투명한 미래를 앞두고 네 능력이 어떻게 쓰여질지 궁금할 거야. 미국에서 쭉 성장한 네가 이 할머니의 고향인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에서 어려운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이 그저 놀랍기만 하구나. 네 공부를 통해 무엇을 읽을 수 있을지 생각을 해 보렴! 유창한 언어의 대가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100년의 고독》, 세계 망명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과테말라의 줄리아 에스퀴벨의 시들을 원어로 읽을 수 있다니! 그리고《모두 다 예쁜 말들》등에서 매혹적으로 스페인 어구를 접목시킨 코맥 매카시와 같은 작가들을 제대로 즐길 수 있겠지.

그런데 이건 단지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정체성에 관한 거야. 어떤 대학에 들어가든 복장부터 음악, 파티 등 그 환경에 걸맞게 순응하라는 압력이 혹독하지. 네 정체성을 표현하고 싶다면 그것이 소위 대중의 흐름을 거스르거나 어떤 대가를 지불해야 될지라도 네 고유한 개성을 지키렴. 그리고 가능하다면 다른 사람들과의 공통분모를 찾도록 노력하고. 네가 내면의 가치를 희생하지 않고서도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해서 할머니는 참 기뻐. 그래, 네가 자라난 미국에 대한 비판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어. 미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것이 다른 세계에 파장을 일으키지 않더냐? 그러니 네가 진정으로 조국을 사랑한다면 멀리서 조망할 필요가 있단다. 그것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네 마음을 든든하게 해줄 거야. 친구이건 적이건 네 장점과 결점을 날카롭게 인식시켜줄 수 있다는 걸 기억해. 네가 자라난 작은 공동체, 브루더호프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겠지.

너는 이제 새 대륙에서 자신을 철저히 검증하게 될 거야.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구세주 예수에 대한 네 믿음이 지난 몇 년 동안 혹독한 시련을 맞았지? 이성은 믿음을 우리 머리 안에 끼워 맞추려 한다. 아! 그렇게 된다면 하나님은 얼마나 작은 신이 되어버리는 걸까? 사도 바울은 신앙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명쾌하게 정의 내렸어! 심지어 과학도 신비한 일 천지라 하지 않더냐? 꽃 한 송이를 분해한다고 치자. 그리고 각 부위마다 명칭을 부여한 후 다시 조합하면 정말 살아있는 식물이 될 수 있을까?

생화에 많은 부위가 있는 것처럼 너 또한 위대하고 신비한 전체의 일부란다. 그저 가족이나 공동체, 한 국가에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짜고 계신 인류라는 천의 한 부분이라는 거야. 구원이라는 큰 그림 안에 너도 한 가닥이 되어 조화를 이루라고 부르심을 받은 거란다. 이 지구가 광대한 우주의 원래 목적으로 돌아가서 창조주를 다시 섬기고 공경하며, 깨진 관계를 회복하고 약하고 가난한 이들을 위기로 몰아넣는 불의한 사회를 바로잡는 것이 바로 구원이야. 환경문제는 더 말할 것도 없겠지? 정말 해볼 만한 도전이지 않니?  네 능력 모두는 이 목표를 위해 쓰도록 해야지. 지성만이 아니라 존재 전체를 걸고 봉사해야 한다! 이 도전의 관문을 여는 열쇠는 복음서 안에 담겨 있어.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  하신 말씀을 보렴. 이건 하나님께서 오래 전부터 인간의 마음에 심으신 것이야.

네가 집에 돌아올 때까지 살아있으면 좋겠구나. 그러면 진정한 인생 수업이 시작될 텐데 말이다. 네 재능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싶다고 했지? 너무나 자연스런 열망이야. 그러나 그것이 궁극적인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단다. 조화를 이루는 것이어야 한다! 어떤 직장을 갖더라도 네가 추구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한 팀으로 일해야 될 거야. 그때 성격의 차이로 좌절하는 일이 생기면 어떻게 될까? 특별히 다른 사람의 의견이 네 창조성을 제한하고 훼방한다고 느낄 때면 말이다. 그러나 갈등 속에서도 네 동료들의 눈을 바라보려고 노력하면 좋겠구나. 화해를 향해 네가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은 겸손함과 용기를 요하지. 조화를 이루라는 너의 부르심이 자아실현보다 더 고귀하다는 것을 기억하렴! 그리고 인생의 가장 중요한 길잡이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고 “의를 위하여 굶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다” 같은 말씀이라는 것도. 실생활은 참 엉망진창일 때가 많아서, 때로는 네가 잘 계획한 것들을 희생할 경우가 생기지. 이때 겸손이라는 덕목을 찾도록 해라. 네가 좇는 목표가 자신을 만족시키는 것보다 더 위대하다는 걸 기억하렴.

독서의 중요성! 하루 중 시간을 아꼈다가 꼭 책을 읽으렴.

물론 어떤 일이든, 심지어는 네가 애정을 갖고 하는 일이라도 지겹고 지칠 수 있어. 그렇다면 어떻게 네 정신을 생생하게 유지할 수 있을까? 네 동료와의 관계를 직장 밖에서도 여전히 유지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구나. 단순히 너랑 맞는 동료만 찾지 말고, 그날 네 일에 대해 이질적인 반응을 보인 사람들에게도 손을 내밀렴. 그들은 인과 관계에 대한 네 지평을 넓힐 뿐만 아니라 네 확신을 명료하게 해줄 거야. 무관심과 자기 몰두로 자기가 모르는 일들과 사람들을 혐오하는 태도는 참 고치기 어려워. 젊은이들 사이에 그런 풍조가 만연하다고 하는데, 다른 의견이 어디서 왔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해봐. 간격을 좁히는데 도움이 되니까. 그리고 젊은 사람들만 사귀려 들지 말고 나이든 사람들도 만나 봐. 노인들도 네 멘토가 될 수 있단다. 친분이 깨질까 두려워 네 잘못을 지적 못하는 일은 없으니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독서의 중요성! 하루 중 시간을 아꼈다가 꼭 책을 읽으렴. 고등학교 다닐 적에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하임 포톡의 "선택 받은 사람들The Chosen(미번역)” 같은 위대한 미국 문학작품을 많이 읽었겠지? 내가 그 책들을 십대에 읽었을 때는 무작정 줄거리와 내 수준을 넘는 등장인물들의 열정과 소동과 황홀경에 푹 빠졌었지. 그런데 어른이 되고 보니 그 작품들이 주는 교훈에 움찔 놀라기도 하고, 깊이 감동을 받게 되는구나. 그러니 더 깊고 넓게 책을 읽어라.

오늘날 우리는 너무나 많은 유언비어· 선전구호· 정보에 온 감각이 맹렬히 공격 당하고 있어. 그런 면에서 진정한 독서는 시간을 들여서인지 아주 다른 영향을 주지. 내면의 존재에 스며든다고 할까? 나는 개인적으로 소설, 역사물을 좋아해. 예시바 대학의 철학교수이자 랍비인 샬롬 카르미는 이렇게 썼다.

“역사책들은 소설을 대체할 수 없다. 챨스 디킨스나 조지 엘리오트를 우리가 읽는 이유는 그들이 우리에게 비전과 통찰력을 주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우리에게 세상을 새롭고 놀라운 눈으로 보게 해주며 논픽션 작품에서 거의 볼 수 없는 전체 그림을 보여준다. 그리고 인간의 본성에 대한 깊은 이해를 명료하게 할뿐만 아니라, 우리의 행동을 유발하는 애매한 의도와 근거를 잘 드러내준다. 이 소설들은 우리에게 사회 과학자들이나 역사학자, 저널리스트가 줄 수 없는 것들을 제공하고 있다.”

만약 역사가 단지 사실들만 나열한 것이라면 인간의 영혼에 대해서는 눈감은 셈이지. 그러나 그 역사를 살아냈던 사람들의 눈으로 우리는 공통된 인류애를 복원할 수 있게 돼. 아래의 책들은 오늘까지도 내가 역사적인 사실을 기억하도록 도움을 줬단다. 앨런 페이턴의 《울어라 사랑하는 조국이여》, 줄리아 알바레즈 작가의 “나비들의 시간 In the Time of the Butterflies ”(미번역), 마커스 주삭의 《책도둑》’ 같은 현대 작품들과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헤르만 워크의 “전쟁의 바람The Winds of War(미번역)” 같은 미국 고전이 있지. 나는 시련이 닥쳤을 때, 신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다면 인간적이라도 해결책을 간구하려는 긍정적인 결말을 좋아하는 편이야. (그렇다고 해피엔딩일 필요는 없지만)  우리 모두 충돌이 생기면 어떤 구제책이라도 원하지 않니? 더욱이 개인의 문제라면. 그러나 공적인 것도 마찬가지겠지?

언젠가 너한테도 모든 것이 공허하고, 주어진 과제가 힘에 겨울 때가 올 거야. 이런 시간은 인생의 한 주기로 보면 된다. 그때는 잘 참아야 해. 하나님께서 다시 힘과 기운을 주실 거라 믿으며 말이야. 언젠가는 네가 너무나 이해하기 어려운, 하나님께서 ‘안돼!’ 라고 막으시는 일이 닥칠 거야. 그때라도 네가 잘 받아낸다면 하나님께서 너를 향한 계획을 볼 수 있는 놀라운 혜안이 생길 거야. 한때 내게 큰 내적인 혼란이 일어난 적이 있었어. 그때 한 친구가 편지를 보내 주었지. 마치 하나님께서 우리가 가는 길 위에 돌무더기를 한 가득 부어놓은 것처럼 느껴질 때, 그걸 방해물로 여기지 말고 일단 우리를 멈춰서 제대로 가고 있는지 점검하라는 선의로 보라는 거야. 우리가 다시 되돌아가야 할지, 아니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 보게 하시려는 뜻이라는 거지.

구스타프 텐그렌, 계곡의 성

여기에 생각 하나를 더해 볼게. 마치 엉뚱한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기대치 않은 기쁨이 올 수도 있으니 들어 봐.  네가 지금은 특별한 공부와 기술을 익히고 있지만, 공동체에 산다는 것은 너의 전문가적 기질만이 아니라 전 존재를 걸어야 한다는 걸 의미해. 예를 들어 볼까? 네가 나이 드신 노인 분을 돌보게 된다면 그분의 어려움이 너의 밝은 기운에 따라 나아질 수도 있다는 것이며, 아마도 이런 과정을 통해 너는 멘토를 얻는 덤이 생길 수도 있지. 또는 네가 하고 싶지 않은 것, 심지어는 네가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을 수용하게 된다는 뜻일 수도 있어. 이런 결과로 정말 깜짝 놀라게 될 거야! 너도 알다시피, 할머니는 오랫동안 교사생활을 하지 않았니? 가르치는 일에 나는 모든 열정을 쏟았어. 한 아이가 장애물을 성공적으로 넘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내 인생의 큰 기쁨이었으니까. 그런데 어떤 사정으로 직업을 바꿔야 했어. 옛날로 돌아가 혼란에 빠진 한 젊은 엄마를 상상해 보렴! 갑자기 재봉일을 하는 사람들을 돌보게 된 거야. 나는 재봉을 할 줄도 몰랐어. 아이들과 매일 지낼 수 없다는 것이 너무 싫어서 엉엉 울고 말았단다. 한편으로는 모두다 내가 얼마나 부적격한 사람임을 금방 알게 될 거라 굳게 믿었어.

그런데 무슨 일이 생긴 줄 아니? 나와 함께 일했던 여자분들은 나보다 나를 더 참아주는 인내의 장인들이었던 거야! 어쩔 수 없이 나도 기술을 한가지씩 익혀 나갔지. 그때 익힌 기술로 내 나이 팔십이 된 지금도 공동체 작업장에서 제작하는 훌륭한 가구의 덮개 봉재를 하고 있지. (친구들이나 손주들에게 손수 재봉해 만든 선물이나 장난감은 어떻고!) 아직도 이렇게 무언가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 참 만족스럽구나. 이렇게 타인이 보내는 신뢰를 너 역시 믿고 반응하면 기대치 못했던 재능을 발견할지도 몰라.

삶과 사람들을 너무나 사랑했기에 온 세계가 교실이나 마찬가지였단다.

게다가 이 경험이 교사였던 내 경력의 종지부를 초래했던 것은 아니야. 오히려 더 넓고 풍족해졌다고나 할까. 몇 십 년 동안 온갖 상황에서 아이들과 청년들에게 스승으로 멘토로 할머니로 지낼 수 있었다는 것이 내 인생의 큰 축복이 아닐 수 없구나. 신뢰는 당연시해서는 안될 가장 소중한 선물이야. 너같이 소중한 젊은이나 노인이나 상관없이 신뢰관계를 맺길 바란다.

네 할아버지 이야길 또 해야겠다. 나는 안드레아스로부터 참 많은 것을 배웠거든. 할아버지의 공식 학력은 9년뿐이지만 삶과 사람들을 너무나 사랑했기에 온 세계가 교실이나 마찬가지였단다. 네게도 그런 일이 일어나길 바란다.

편지 한 통이라고 하기에는 참 긴 글이 되었구나. 자, 이제 그만 네가 제일 좋아하는 아름다운 몬테비데오 공원에 가서 책 하나를 펴고 예르바 마테 차를 마시렴. 이 할미를 생각하면서……

 

2018년 12월 뉴욕 월든에서

너를 사랑하는 피다 할머니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