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 아내와 나는 미국 미주리 주의 라 플라타 지역으로 이사 온 뒤 지금까지 3,200㎡(약 1천 평)의 농가에 붙어 앉아 평화를 이루려 시도해왔다. 우리 공동체는 ‘쉴만한 물가 성소’(Still Waters Sanctuary)라고 불리는데 시편 23편에서 영감을 받았다. “나를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고, 내 영혼을 소생시키신다.”

그사이 세계 곳곳에서 1만 명이 넘는 구도자들이 트랙터, 전기톱, 전동 공구, 컴퓨터, 텔레비전, 스마트폰, 그리고 흔한 소비재와 서비스를 떠나 자유로운 삶을 경험하러 우리를 찾아왔다. 우리는 전기와 석유 제품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추구한다. 이렇게 말하면 우리가 무언가를 놓치고 산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대신 우리는 염소, 소, 닭, 오리, 벌, 버섯, 허브 가든으로 풍성한 삶을 산다. 또한 옷감 짜기, 실 잣기, 무두질, 과일 말리기를 하고, 페달을 돌려 곡식을 빻는다. 화학 용품이나 기계 없이 먹을거리를 기르고, 거둔 농산물을 돈을 받지 않고 나눈다. 지역에서 모은 자연 재료를 가지고 손수 집을 짓는다. 그뿐 아니다. 자전거로 이동하고, 밀랍으로 만든 촛불로 불을 밝히며, 직접 음악을 연주하고, 야생의 먹을거리를 찾아 식탁에 올리고, 말을 이용해 목재를 옮긴다. 우리의 삶은 해가 뜨면서 시작한다. 해가 뜨면 한 시간 동안 아침 기도를 드리고, 창조세계로 나가 하루의 일을 시작한다.

또한 우리는 지역 공동체의 노인 요양소와 노숙인 쉼터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한다. 그리고 마음속에서 정의를 위해 싸우라는 목소리가 들려오면 시민 불복종 행동을 실천하고 하룻밤을 감옥에서 지내기도 한다. 웰덴 베리가 말한 영성을 실제로 살아보려고 하는 거다.

쉴만한 물가 성소에서 사용하는 촛대들. 밀랍을 이용해 직접 초를 만든다. (사진: Mary 제공)"

왜 단순하게 사는가?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로서 우리는 전쟁의 뿌리가 무엇인지 밝혀내려 애쓴다. 탐욕, 소비주의, 두려움, 노예,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휘두르는 권력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들은 사실 서로를 먹고 자란다. 만약 우리가 물질에 매여 산다면 그걸 다른 사람들로부터 보호하거나 다른 사람이 우리를 위해 그 물질을 보호하게 해야 한다. 두려움과 탐욕은 우리가 문을 잠그고, 감시 시스템을 설치하고, 이 땅에서 보물을 쌓게 한다. 도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찰을 부른다는 건 사실 우리가 그토록 멀리하고 싶은 폭력의 제국을 불러들이는 일이다. 경찰과 군대는 모두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강압과 치명적 무기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삶 곳곳에 있는 전쟁의 씨앗을 체계적으로 제거해야 한다. 1760년대 퀘이커 지도자 존 울먼은 의자 하나, 염색된 옷가지, 은잔 하나, 그리고 설탕 같은 소유물 몇 가지를 포기했다. 그 물건들이 만들어지면서 전쟁과 노예 상태를 자아낸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울먼은 “우리가 가진 소유물이 전쟁의 씨앗들에 양분을 대주고 있는지 시험하라”고 도전한다.

지나치게 많이 소유하는 것 역시 일종의 전쟁이다. 어떤 사람이 자신이 필요한 것보다 열 배나 많은 재화를 소유하는 사이에 다른 사람들은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며 집 없이 떠돌아다닌다. 성 바실리오가 선언한 것처럼 “장롱에 넣어둔 여분의 외투는 당신의 것이 아니다. 추위에 벌벌 떨고 있는 가난한 사람에게서 훔친 것이다.”

단순하게 산다는 건 산업사회가 환경을 희생으로 치르고 제공하는 편안함과 효율성에 저항한다는 뜻이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벌이는 행동은 하나같이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파괴하거나 더럽힌다. 변기의 물을 내리고, 전등을 켜고, 지구 반대편에서 가져온 커피를 훌쩍훌쩍 마시고, 플라스틱으로 만든 제품을 사고, 화석 연료를 사용하고, 화학 약품으로 집을 청소하는 일이 그렇다. 웬델 베리는 이렇게 적는다. “자연을 파괴하는 것은 단순히 청지기 정신이 부족하거나, 어리석은 경제 탓이거나, 또는 가족의 책임을 배신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도로 그분의 얼굴에 내던지는 일이다.”

물질의 신 맘몬에 믿음을 두는 순간 우리는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 창조세계와 하나님을 향한 전쟁 상태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그리고 이 순환은 스스로 발동력을 얻어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는 한 더욱 가속화된다. 우리는 어떤 비용을 들여서라도 이를 방해해야 한다. 전쟁을 통해 건설된 사회에서 평화를 만드는 모든 행위는 이런 힘을 방해하고 불편하게 만든다.

공동체에서는 트랙터 대신 말을 사용해 농사를 짓는다. 열심히 일한 말들에겐 푸른 초장이 기다리고 있다.

손으로 일하기

그러면 어떻게 해야 그런 길로 갈 수 있을까? 간디의 제자인 란자 델 바스토(1901~1981)는 단순한 공식을 제안한다. “손으로 일하라. 다른 사람이 대신 일 하도록 강요하지 마라. 임금을 받는 노동자라고 부르면서 다른 사람을 노예로 만들지 마라. 지구와 손, 그리고 입 사이의 가장 가깝고 단순한 길을 찾아라. 자신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땀을 흘려야 할 때 곧 그것이 자신에게 정말 유용한 것인지 알게 된다. 스스로 하라. 이런 길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어라.”

델 바스토는 스스로 이 비전을 살아내려고 노력했다. 그는 1948년 프랑스 라 보리 노블에 방주 공동체를 설립했다. 아내 세라와 나는 이곳에서 18개월을 지낸 뒤 영감을 받고 미주리에 와서 ‘쉴만한 물가 성소’라는 불완전한 실험을 시작했다.

방주 공동체의 일상은 기도와 노래, 그리고 종소리로 방점 찍혀 있었다. 명상의 종소리가 노동을 멈추고 하나님의 임재에 뿌리를 내리라고 사람들을 초대한다. 그곳에서는 함께 의견의 일치를 이뤄가며 공동의 결정을 내렸다. 우리는 저녁이 되면 손수 만든 의자에 앉아 식구들이 실을 잣고 직물을 짜서 옷을 만드는 걸 지켜봤고, 수천 명의 손님을 돌봤으며, 말과 사람의 힘을 이용해 기른 유기농 재료로 식사를 차렸다. 3톤의 감자, 3톤의 밀, 0.5톤의 토마토를 기르는 일을 도왔고, 젖소 일곱 마리를 길러 치즈와 버터, 크림을 만들었다. 전기 공구를 쓰지 않고 땔감을 만들어 난방하고 온수를 준비했다.

방주 공동체의 모든 멤버는 세금을 낼 정도 이하의 수입을 얻는 가난한 삶을 살기로 서약한다. 전쟁 세를 내지 않아도 될 정도로 말이다. 1년에 한 번 성 미가엘 축제가 열릴 때면 방주 공동체는 금고에 남은 돈을 모두 다른 곳에 나누어 준다.

그곳은 우리가 경험한 곳 중에서 평화로운 하나님 나라와 제일 가까운 삶을 사는 곳이었다. 우리는 부와 소유가 아니라 믿음과 나눔에 세워진 새로운 사회를 목격했다. 산상수훈을 직접 살아내는 모습을 봤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마라.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마태복음 6:31~33) 방주 공동체의 삶은 석유와 다른 나라의 자원을 위한 전쟁과 억압적 노동, 공해가 필요하지 않았다. 창조세계를 해칠 일도 없었다. 손으로 하는 노동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였다. 그렇게 우리의 삶에서 전쟁의 씨앗이 제거되었다.

사람들이 공동 식사로 모였다. 공동체엔 냉장고가 없기 때문에 주방장은 음식물이 남지 않도록 세심하게 양을 조절해야 한다.

평화를 만드는 일에 뒤따르는 도전

평화를 위한 하나님의 뜻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일에는 사회적 정치적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다. 우리가 예수님과 초대 기독교인처럼 살도록 부름을 받았다면 사랑이 모든 두려움을 몰아내도록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체계적인 악이 무엇인지 밝혀내 가면을 걷어내고 저항하며, 모든 불의한 사회구조에 협력하는 일을 그만두라는 소명을 받았다. 이런 부르심을 피하려고 많은 기독교인이 더 안전하고 덜 지장을 주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중의 하나가 ‘자선’이다. 자선은 위대한 것이지만 그걸로 전쟁의 씨앗이 제거될 것인 척할 수는 없는 일이다.

사람들은 우리의 평화를 만드는 일이 어떤 방해를 받았는지 묻는다. 우리 중에는 핵무기 공장과 셰일가스 시추장으로 가는 길을 막아 감옥에 갇힌 사람이 있다. 전쟁 기간에는 우리의 평화적 입장 때문에 살해 위협을 받은 적도 있다. 그리고 우리의 단순한 삶의 방식 때문에 욕을 먹고 조롱을 받기도 했다.

물론 이런 외적인 도전 말고도 내면의 도전도 겪는다. 평화롭게 살려고 노력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쉴만한 물가 성소에서 불화, 분노, 질투, 성차별, 인종차별, 두려움, 그리고 일상의 탐욕을 경험한다. 어떤 때 나는 아이들을 인내심을 갖고 돌보기 위한 사랑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곤 한다. 그리고 때로는 아내를 경멸하고 얕잡아 보기도 한다.

철저하게 단순한 삶을 추구하는 우리 역시 쉽게 남을 판단하려는 유혹을 느낀다. 그때는 그 유혹을 직면하고 단호하게 거부해야만 한다. 우리가 아무리 평화로운 세상을 건설하려고 노력하지만 일상에서 우리는 여전히 낭비와 공해, 파괴적 체계의 일부임을 실감한다. 방주 공동체에서도 이와 비슷한 위선과 모순, 단점을 경험했다. 그런데 실패했다고 아예 포기해야 하는 걸까?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평화로운 나라를 향해 계속 가파른 언덕을 올라야 한다.

공동체 식당에서 아빠 등에 타고 있는 필자의 딸. 즐거움을 나누고 축하하는 일은 삶에 대한 감사의 표현으로 공동체 비전의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사진: Katie Currid 제공)

열매 맺기

평화와 정의를 살아내려는 우리의 시도에는 결점이 많다. 그런데도 쉴만한 물가 성소는 지난 8년 동안 캘리포니아, 네바다 주의 리노, 캔자스 등에서 시도되는 자치 공동체들의 탄생에 양분을 제공했다. 같은 시도를 하기 위해 땅을 알아보고 있는 그룹들도 있다. 우리는 평화 이루기와 완전한 비폭력을 실험하는 사람들을 연결하기 위해 ‘가능성 연합’(Possibility Alliance)을 조직했다.

우리는 또한 ‘자전거 타는 영웅들’(Bicycling Superheroes) 운동의 본부 역할을 맡고 있다. 7백 명의 튼튼한 영웅들이 전국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요청에 응답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슈퍼 히어로 복장을 한 사람들이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지 자전거를 타고 간다. 이 영웅들은 디트로이트 도심과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피해를 입은 지역들을 포함한 26개 주와 7개 나라에서 활약하고 있다.

지역에서는 백장미 가톨릭 워커 농장, 평화·퍼머컬쳐 교육센터, 세 곳의 비현대식 농장으로 구성된 토지 신탁이 우리 공동체 근처로 옮겨왔다. 이 모든 축복에 감사하면서도 우리는 하나님이 다음에는 어디로 이끄실지 도무지 알지 못한다.


*이 글은 <복음과 상황> 296호에도 실렸습니다. (20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