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이들에게 서로의 삶은 나눔 그 자체였어요. 검정머리 딸 아비가 내 품에서 한 달을 지내는 동안, 친구 진은 아기를 낳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정말 오랜만에 이 친구와 같은 브루더호프에 살게 되었지 뭐예요. 우리 아이들이 친구가 되어 함께 모래밭에서 놀고, 헤엄치는 걸 배우고, 1학년에 함께 들어갈 걸 상상하는 일은 정말 신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뇌성마비는 로브의 모든 중요한 단계마다 걸림돌이 되었어요. 아비는 시계처럼 재깍거리며 무럭무럭 자랄 때, 로브는 삼키고, 숨쉬는 일 자체가 너무 힘들어, 한 스푼도 안 되는 분유도 넘기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기침 한 번에 먹은 걸 다 토해서 모든 수고가 수포로 돌아가고, 엄마와 아들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야만 했어요. 이런 일로 우리는 좌절의 눈물을 삼켜야 했고요. 아이를 먹이지 못하는 엄마의 마음과 도울 길 없는 친구의 마음을 어떻게 헤아려야 할까요?

내 동생은1980년 대에 장애의 길을 들어섰습니다. 너무나 어려운 용어로 던져진 신경학적 예언의 합창. “이건 불가능, 저건 불가능 예상.” 우리 가족으로서는 이런 말들을 감당하기가 벅찼습니다. 그 예언 중 몇몇은 사실로 밝혀졌지만 대부분은 실현되지 않았어요. 로브와 부모가 특별 검진 행보를 시작했을 때, 난 그들을 짓누를 짐의 무게가 두려웠습니다. 그런데 루엘과 진은 현명한 신경과 의사에게 이런 이야길 들었습니다. “집에 아이를 데려가서 사랑해주세요. 로브는 부모님에게 자신이 뭘 할 수 있는지 보여줄 겁니다.” 의사 선생님, 할렐루야!

이정표를 하나씩 세워 나갑니다. 정말 미칠 것 같은 시간들도 하나씩 하나씩. 다행히 로브는 집에서는 단단한 가족(3명의 형아들과 폭죽 같은 아기 여동생)과 학교에서는 든든한 교사들과 대응력이 재빠른 의료치료팀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친구들은 어떻고요. 더이상 바랄 나위 없이 충직한 친구들은 로브가 뭔가를 이룰 때마다 환호성을 지르고, 로브가 뒷걸음 칠 양이면 모두 결집했습니다. 로브의 보행 보조기에 기대어 뒤뚱거리며 걸음을 배운 친구들이라면 로브의 뒤를 든든히 봐줄 게 분명합니다.

아비의 일상은 로브를 중심으로 이뤄집니다. 내가 로브의 오후를 맡은 책임자가 된 후에는 더욱 각별했습니다. 딸아이와 나는 위루관 사용법 완파를 시도하며 튜브와 펌프 사용이 어려울 게 뭐냐며 장담을 했지요. 그러나 실상은 정말 진땀이 나도록 어렵습니다. 얼마나 천천히 펌프를 작동해야 하지? 물을 멈추는 최적의 시간은? 저녁 식사에 기포가 안 생기도록 잘 해야 되는데, 어떡하지?

어쩔 때 로브는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고통의 원인이 될만한 모든 걸 일일이 체크하며 신경을 곤두세웁니다. 사랑하는 이가 말도 못한 채 고통받는 걸 겪어본 사람이라면 알만한 극심한 공황상태를 맞이하곤 했습니다.

승리의 노래를 불러요.

바로 이 혼란스런 틈에 한 작은 인물이 예상대로 로브의 팔꿈치 옆에 등장합니다. 그 작은 여자아이는 몇 개의 튜브를 비껴서 로브가 앉은 보조의자 바퀴 위에 발을 올리고 코와 코를 맞대고 말을 겁니다. “로브야, 노래 좀 같이 부를까?”

노래는 친구들이 하는 건 맞지만, 지금은 자장가를 부를 시간이 아니랍니다. 맥도날드 아저씨의 농장 같은 노래요? 그 아저씨가 농장이 있든 말든 누가 상관이랍니까? 로브는 아기가 아니라고요. 그럼, 우리는 친구가 우울할 때 부르는 리듬을 연주해 봅니다. 그런데 이럴 때는 어떤 노래가 좋을까요?

친구라면 적당한 곡을 알고 있을 게 분명합니다. “엄마, 내가 슬퍼할 때마다 엄마가 불러 준 노래를 부르면 어떨까? ‘The red, red robin’ 같은 거?” (우리 아버지는 나한테 정말 오래된 팝송을 불러주곤 하셨습니다. 본인의 아버지가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래, 그러지 뭐. 우리는 정말 삶이 결코 쉽지 않은 순간에 여름날을 이야기 한 노래와 사는 게 얼마나 쉬운지를 이야기한 노래를 불렀습니다. 우리는 온 거리가 어둠으로 완전히 뒤덮인 순간에 햇볕으로 찬란한 거리를 노래했습니다. 우리는 지금부터는 주욱 파란 하늘이 펼쳐질 거라며 큰 소리를 치다가, 이러다 하늘이 무너지는구나 파랗게 질려서 겁을 먹다가, 우리가 이렇게 함께라면 뭐든지 감당할 수 있을 거야 다짐을 했지요.

로브의 방에 붙은 아비의 포스터

로브는 우리의 시도들에 흡족해 했습니다. 거의 대부분 로브의 시선은 아비를 따라 움직였고, 로브는 귀에 울리는 아비 노래의 흥에 동참했습니다. 우리는 아는 노래를 부르고 또 불렀습니다.

이 노래 중에 별 수고 없이 순위 1위에 오른 곡이 있으니 피트 시거의 신나고 짤막한 노래랍니다. 이 곡이 왜, 누구를 위해 쓰여졌는지 모르지만 가사는 이렇습니다.

내가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한 순간
넌 내 맘을 바꿨어
넌 내게 희망을 줬어(그렇고 그런 말이 아니라)
너는 우리가 제때에 나눌 수 있는 길을 보여줬어(너와 나 그리고 록펠러)
나는 계속 전진할거야
네 얼굴은 우리 눈물 가운데도 빛날거야
우리가 또 작은 승리의 노래를 부를 때
소중한 친구야, 거기에 있어줘
하모니로 부르자
소중한 친구야, 너도 함께하자

노래를 몇 차례 불렀는데 한 이름이 “록펠러”를 대신하는 겁니다. 누군가 “로버트(로브) 클레먼트”가 록펠러를 대체 가능하다는 걸 깨달은 뒤론 가사는 그렇게 바뀌었지요.

아비의 생일마다 로브는 축하하러 왔습니다. 아이들은 소파에 앉아 이 노래를 불렀지요. 노래 좀 들어보실래요?

로브의 생일마다 아비는 우리 가족 모두가 그 집에 가서 축하식을 거행하도록 했습니다.

올해만 빼놓고.

엄청나게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이럴 때에 유행병은 폐가 약한 사람을 공격합니다. 어, 우리 로브는 폐가 약한데.

로브는 1월의 대부분을 보온 담요를 덥고 침대에서 보냈습니다. 로브의 산소 수치가 조금만 더 높으면 좋겠다, 마음을 모은 나날이었습니다. 로브는 유치원을 매일 결석했고, 아비는 로브의 결석 여부와 결석 이유를 매일 보고했습니다. 우리가 병문안을 간 날, 로브는 마침 곤히 자고 있었어요. 담요 세 장에, 산소 수치는 89퍼세트. 우리 가족은 로브가 좋아하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로브의 눈은 깜빡이지 않았지만 산소 수치는 90으로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정말이예요. 간호사에게 물어보세요). 로브가 깨어났냐고요? 아니요. 봄에는 과연 깨어날까요?

봄은 바이러스를 불러왔습니다. 우리는 작은 딸네미 앞에서 바이러스에 대해 너무 떠들지 않으려고 했지만 우리집 주변에는 끔찍한 이야기를 하는 어른들 투성이었습니다. 그들은 아이가 듣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아이는 왜 학교에 가지 못하는지, 왜 로브 생일파티에 갈 수 없는지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는 자기가 아는 사람 중에 호흡 곤란인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과 멀찍이 떨어지면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아이는 우리가 로브네 집 창문 앞에서 큰소리로 노래를 불러야 한다고 다짐을 받아 냅니다. 로브는 이걸 이렇게 생각합니다.

부모는 아이들이 잠들기 전에 아이들의 마지막 생각을 들어야 할 신성한 부담이 있습니다. 그런 밤마다 우리는 아이들의 걱정을 기도로 돌리고 하나님이 지키시도록 내어드립니다. 아이들이 드리는 단순한 기도 대목에는 “소중한 친구야, 거기에 있어줘”가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이 아이들을 모두 굽어 살피소서. 그리고 승리의 노래를 부를 날을 속히 허락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