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 running toward her mother

세상은 아이들이 필요하다고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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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이름은 오늘: 척박한 세상에서 어린 시절 되찾기(가제)』에서. 한국어 미발간. 

갓 태어난 아기의 울음소리가 마음을 붙잡는다. “사랑해 주세요. 도와주세요. 보호해 주세요.” 이때 우리 어른은 아이를 보호하고 돕고 싶어한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이들이 필요한 건 우리다. 아이들이 절박하게 필요한 것은 바로 우리다.

전문가들은 인구 과잉이 지구를 파괴한다고 말하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 행성을 파괴하는 건 다름 아닌 탐욕과 이기심이다. 아이들이 아니다. 아이들은 받는 사람이 아니라 주는 사람으로 이 땅에 태어난다. 우리가 잠시라도 귀 기울이면 아이들은 선생님으로 우리에게 온 존재임을 알게 된다. 복잡한 세상에서도 어른은 아이들만이 가르칠 수 있는 교훈에 귀 기울여야 한다.

아이들은 정직함과 단순함을 바란다. 말 뒤에는 행동이 따르기를 기대한다. 아이들은 쉽사리 화를 내지만 그만큼 빨리 용서한다. 우리 모두에게 두 번째 기회라는 엄청난 선물을 안기는 거다. 또한 아이들은 정의와 공정한 놀이의 신봉자다. 아이들은 새로운 눈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고 우리가 사는 세상의 놀라운 아름다움을 볼 수 있게 우리를 돕는다.

한번 상상해 보라. 이런 가치를 우리의 정부와 외교 정책, 사업 운영 모델, 환경 관련 결정, 그리고 교육 이론에 적용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아이들을 환영하지 않는 사회는 불운한 세상이다. 바둑판의 수는 아이들이나 부모 또는 선생님에게 유리하도록 놓여 있어 보이지 않는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격차가 넓어질수록 기본 주거와 복지마저 감당하지 못하는 가족의 수가 불어나기만 하고, 가족들의 이런 절박한 상황은 많은 도시에서 24시간 어린이집의 증가를 부추긴다. 부모들은 어쩔 수 없이 긴 시간을 일해야 하는 탓에 자신의 역할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만다. 아이들 옷을 입히고, 아침을 먹이고, 병치레하는 아이를 돌보고, 밤에 재워주는 일 같은 전통적인 부모의 임무가 사라져 간다.

반면에 아이들의 독창성과 능력을 위협하는 검증을 받지 않은 새로운 정치적 방침이 교사와 아이들의 손에 툭 던져진다. 이런 결정을 내리는 이들의 귀에 반대의 목소리는 좀처럼 닿지 않는다.

수십 년을 아이들을 위해 일하고 은퇴한 교육자인 비벌리 브랙스턴은 현재의 딜레마를 이렇게 요약한다.

사람들에게 오늘날 세상에서 자라는 아이들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느냐고 물으면 한결같이 대답한다. 미디어와 기술에 퍼붓는 엄청난 시간, 음란물과 폭력에 대한 광범위한 노출, 턱없이 부족한 가족 시간과 대충 때우는 끼니, 공부 경쟁이 주는 스트레스, 그리고 자연을 탐색하는 일에 보이는 무관심. 하지만 이런 문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물으면 한결같이 화난 듯한 표정으로 어깨를 들먹인다.

나의 아내 버레나와 나는 대가족에서 자라났고 여덟 자녀를 얻는 축복을 받았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마흔네 명의 손자 손녀를 주셨고 지금까지 증손자 한 명을 주셨다. 한 명 한 명 소중하고 감사하다.

오십 년 가까이 함께 살며 아내와 아내 세계 곳곳을 찾아 다녔다. 또한 개발 도상국이나 전쟁이 벌어지는 나라를 방문하기도 했다. 르완다, 이라크, 가자, 그리고 분쟁을 겪던 북아일랜드를 찾은 적이 있다. 그때마다 수많은 아이들을 만났다. 학교 환경은 열악하기 짝이 없었지만 열정은 대단했다. 열의에 찬 눈을 한 아이들은 자기들이 뭘 배우고 있는지 우리에게 보여줬고, 노래를 불러 줬다. 우리를 아주 따듯하게 환영했다. 교육이라는 특권을 얻기 위해 수십 킬로미터를 걸어 다니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런데도 아이들이 겪어야 했던 배고픔과 곤궁함의 기색은 얼굴에 드리워 있지 않았다.

극도로 가난한 나라에서 아이들은 국가의 보물로 여겨지고 있었다. 아이들은 단순히 가족의 성을 물려받는 존재가 아니라 전체 문명의 미래로 여겨졌다. 아무것도 없이 가난한 곳에서도 마을 한가운데 학교를 운영했고, 볼품없는 물건이라도 구할 수 있는 건 모두 긁어 모아 공동체가 힘을 합해 아이들을 교육하는 걸 봤다.

매번 여행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올 때마다 우리는 문화적인 충격을 받았다. 서구 사회에는 돈이 넘쳐나지만 그게 어린이집이나 학교로 흘러가는 걸 좀처럼 볼 수 없다. 그렇다고 우리 사회에서 아이들을 교육하는 장소가 공동체의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는가? 아이들을 국가의 보물로 여기고 있는가? 앞으로 돈을 벌어 구매력을 지닐 미래의 소비자 정도로만 여기느냐고 물으면 ‘예.’라고 답할 거다. 그리고 독특한 개개인으로 문명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놓을 존재로 여기느냐고 물으면 “별로.”라고 답할 것이다. 사실 우리가 즐겨 하는 토론이란 아이들을 낳는 일에 대한 찬반 토론뿐이다. 가계 부담이나 감당할 수 없는 의료비, 그리고 교육의 부담에 관해서만 얘기한다.

자녀 넷을 둔 이웃 스티브와 새넌 부부와 대화를 한 적이 있다. 아이들을 경제적인 눈으로만 보는 경향에 대해 새넌은 이렇게 말했다.

불행히도 미디어와 세상이 우리에게 “아이를 기르는 데는 이만큼의 돈이 든다.”라고 말하면 그만큼 사람들은 부담을 느끼고 말아요. “내가 돈을 얼마나 갖고 있지?”라고 물을 게 아니라 “내가 사랑을 얼마큼이나 줄 수 있을까?”라고 물어야 하는데도요.

갓 태어난 아기를 처음 봤을 때 “다시 데리고 가요.” 라거나 “아기를 원하지 않아요.”라고 말할 부모는 없잖아요. 아이의 눈을 들여다보는 순간 사랑을 느끼고, 기쁨에 압도되지 않는 부모를 봐야 한다면 너무 가슴 아픈 일입니다.

다른 사람과 나누지 못할 기쁨을 소유한다는 게 무슨 소용이 있어요? 혼자 기뻐한다는 게 가능하기는 해요? 이기적인 기쁨이요? 기쁨은 나누라고 있는 거에요. 아이들이 많을수록 주변에 나눌 기쁨이 생기고 그 기쁨은 다시 배로 늘어납니다.

세상은 아이들이 필요하다. 그리고 아이들은 우리가 필요하다. 단순한 생존 이상의 것을 주어야 한다. 인도의 시인 라빈드라나트 타고르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은 살아있는 존재입니다. 자기 주변에 관습의 껍질을 둘러친 어른보다 더 생생히 살아있는 존재입니다. 이런 아이들의 정신적 건강과 발달을 위해 공부하는 학교만이 아니라 인격적 사랑의 영이 이끄는 세상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당신이 바꿀 수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적대적인 세상의 폭풍이 건강한 어린 시절을 빼앗는 이 때에도 용기 있는 부모님과 선생님들이 폭풍에 맞섭니다. 『그들의 이름은 오늘: 척박한 세상에서 어린 시절 되찾기(가제. 한국어 미발간)』에서 어린 시절을 되찾게 돕는 길을 읽어보세요.

toddler craw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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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Johann Christoph Arnold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

결혼, 부모역할, 교육, 노년을 주제로 글을 쓰고 강연을 하는 아놀드는 기독교 공동체 운동 브루더호프에서 목사로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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