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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rning over the bay

    나의 아이티

    - 필립 마우(Phillip Mow)

    2010년 03월 31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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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아티클은 'Plough'라는 잡지에 실린 글입니다. 열여덟 살 꿈많은 이 영국 청년은 얼마전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기 위해 호주로 떠났습니다. 한국에서 언제나 뜨거운 이슈인 '교육'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던져주리라는 기대로 번역해 보았습니다.

    인문계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기 3개월을 앞두고 난 학교를 그만뒀다. 난 언제나 전자공학을 공부하는 것이 꿈이었다. 학교 생활도 내게 잘 맞았고, 숙제나 공부할 분량이 적진 않았음에도 난 모든 수업들을 즐겼다. 그런데 왜 그만뒀나? 선생님들과 반 친구들이 물었다. 나도 나 자신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설명을 해 보도록 하겠다.

    사실, 이러한 결정의 발단은 한달 전 포르토프랭스를 강타하며 23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아이티 지진 참사였다. 단지 몇 분만에 도시는 시체로 가득한 폐허로 변했다. 끝없이 치솟는 사상자와 난민 수를 다루는 신문의 헤드라인에 내 마음은 주춤거렸다. 여전히 잔해 속에서 시체들이 발견되는 가운데 난 왜 이러한 일이 생기는가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 지진은 누구의 잘못이란 말인가?

    한가지 분명한 것은 지진은 자연 재해라는 사실이다. 단지 포르토프랭스가 지진대 위에 있었을 뿐이다. 섬의 침식 작용과 더불어 지진의 진도와 강도가 그토록 심하게 지대를 뒤흔들었을 뿐이다. 그렇다고 자연만을 탓할 것인가? 사실, 지진 자체로 발생한 사망자 수는 극히 적었다. 문제는 부실하게 지어진 건물들이었다. 지진이 일어났을 때, 포르토프랭스의 많은 건물들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일시에 무너져 펜케익처럼 되어 버렸다. 지지기반이 약했던 층들이 무너지면서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은 압사당했다. 과밀 지역의 수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죽음의 덫으로 내몰리면서 참담한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아이티는 서반구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이다. 그리고 그 가난이 사망자의 수를 가중시켰다. 이러한 사실이 나로 하여금 또 다른 질문을 던지게 하였다. 왜 아이티는 그토록 가난한가? 이 나라의 오래된 고난의 역사가 그에 대한 답을 말해주고 있다. 1803년 민중 봉기로 노예제가 폐지된 후, 잔혹한 제국주의가 이 섬나라를 강탈했다. 우선 열강들의 봉쇄가 있었다. 프랑스는 무역 재개의 조건 중 하나로 아이티 혁명으로 잃게 된 노예와 재산의 배상을 요구했다. 아이티 차관에 적용된 고리의 이자율과 농산물의 착취, 연이은 군사사적 점령은 열강의 주주들에게 부를 보증했지만 아이티의 농부들에겐 경제적 노동 착취만을 안겨줬다.

    이러한 역사를 보면서 난 제1세계의 시민으로서 아이티의 가난에 대해 나 또한 책임이 있다고 느낀다. 그렇다면 난 어떻게 그들을 도울 수 있을까? 이것은 정말 어려운 질문이다. 나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접 아이티에 가서 그들을 돕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라 생각한다. 물론 재정을 기부하는 게 언제나 효과적일 방법일지 몰라도 그보다는 훨씬 더 급진적인 변화가 지금 내게 필요하다고 난 느꼈다. 난 깨달았다. 내가 아이티와 같은 나라들의 가난을 지속시키는 제1세계의 사회 시스템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있었음을. 특별히 내가 원했던 5년간의 대학 교육과 진로를 생각해 볼 떄 더욱 그러했다. 그것은 내게 유익할진 몰라도 순전히 이기적인 것이었으니까. 그래서 난 내 자신의 유익을 위해 일하는 것에서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일하는 것으로 내 삶의 방향을 다시 잡았다.

    난 호주의 백만장자인 칼(Karl Rabeder)의 이야기에 많은 감명을 받았다. 그는 최근에 가지고 있던 모든 돈을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돈이 행복을 가로막는다는 게 그의 이유였다. 이와 유사하게 나 역시 부를 약속하는 학업과 경력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대신 내 시간을 다른 이웃들을 돕는데 자원할 생각이다. 또, 지진 피해자들과 함께 한다는 뜻에서 내 높은 생활 수준을 낮춰보려고 한다. 예를 들어, 몇몇 친구들과 함께 하루에 두끼만 먹고 종종 저녁 금식도 하기로 했다. 우리가 이렇게 아낀 돈은 아이티와 같은 제3세계의 나라들을 위해 일하는 구호단체와 자선단체에 기부할 예정이다. 실제로 이런 결정들을 하고 나니 내 삶이 한결 더 행복해졌다. 세상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내가 큰일을 했다고 생각진 않는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아이티 지진으로 인해 움직인다면 세상이 어떻게 바뀌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Child in Hai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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