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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전쟁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평화가 왔습니다.

    - 스테판 티자 (Stefan Tietze)

    2010년 01월 27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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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국 브루더호프(Bruderhof) 공동체에 살고 있는 구 동독 출신의 형제가 한국 교회에 공개 편지를 보내왔다. 이전에 적이었던 서독 출신의 형제와 진실한 형제애와 사랑의 삶을 나누며 살고 있는 이야기를 통해 한국 교회가 남북한의 평화를 일구는 역할을 모색하는 기회가 되길 기대해 본다.

    한국은 전쟁의 위기에 놓여있지 않으며 곧 하나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한국의 통일은 먼 미래에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바로 내일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20년 전이었습니다. 독일은 지금의 한국처럼 분단되어 있었습니다. 냉전의 기운은 강력했고 심각하게 뜨거웠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1983년 9월 1일 소비에트가 대한항공 007편 보잉 747 점보제트 비행기를 추락시킨 사건을 여전히 기억할 것입니다. 사망한 269명의 승객들은 서방 민주국가와 공산국가 사이의 40년 이상 지속되온 냉전의 무고한 희생자로 헤아려질 필요가 있습니다. 세계 권력 구조 안에서 국경을 마주하고 서로 적대시 하던 독일인들이 당시 느꼈던 긴장과 불안함은 오늘날 많은 한국인들의 감정과 진정으로 닮아 있습니다.

    냉전 당시 동독인과 서독인은 세뇌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우리 스스로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한국인들이 자신들의 진정한 마음 상태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것도 그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우리는 모두 선량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높은 계층에 있던 크리스천 정치가들조차 그와 같이 거짓되고 기만적인 세뇌 교육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안드레아스(Andreas)는 서독 북부 지방의 중산층 가정에서 1966년에 태어났습니다. 숙련된 석공이자 벽돌을 쌓는 직공으로서 일주일에 60시간을 일했던 그는, BMW 스포츠카를 소유할 정도로 물질적으로 풍요했던 젊은이였습니다. 그의 아버지의 우상은 미국인 복음 선교자 빌리 그래함(Billy Graham)이었습니다. 안드레아는 그의 가족과 같이 신실한 침례교인이었습니다. 1987년 그는 나토(NATO)군의 일원인 서독 군(The Bundeswehr)에서 15개월의 병역의무를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임무는 독일에 있는 미국의 선제 공격용 핵미사일 기지를 지키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그 세대의 다른 사람들처럼 국가에 대해 봉사하고, 동독으로부터 서독을 지켜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그의 적은 ‘나’였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동독 드레스덴(Dresden)에서 1972년에 태어났습니다. 나의 부모님은 내가 다니던 학교 선생님의 대부분이 그러했듯이 공산당원이었습니다. 나는 아직도 우리 마을을 방문했던 김일성을 환영하기 위해 어떻게 다른 학생들과 함께 길가에 줄지어 서 있었는지 기억합니다. 나의 삶은 이미 서방국가의 제국주의에 맞서 싸우는 데 헌신하도록 정해져 있었습니다. 8년 동안의 유도 훈련을 마치고 나는 검은띠를 땄으며, 공산주의 캠프에서 메달을 따기도 했습니다. 1989년, 나는 대학에 일자리를 얻기 위해 우선 동독 군대에 3년 복무를 자원하였습니다. 그것은 의무복무 기간의 두 배나 되는 것이었습니다. 난 그곳에서 안드레아와 같은 자본주의 후손들에 맞서 동독을 방어해야 했습니다. 내가 지켜야 했던 국경과, 내가 죽일 준비가 되어 있던 안드레아와 같은 적들이 바로 같은 그 해에 사라지게 될 줄을 나는 정녕 몰랐습니다.

    동독과 서독은 모두 서로를 파괴시킬 준비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오늘날의 남한과 북한이 서로 심각하게 대치하고 있는 것과 같았습니다. 양쪽 정부는 결코 오지 않을, 서로를 패배시킬 그날(the X day)을 위해 여러가지 계획과 전략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젊은이들은 수십 년 동안 정부와 교회에 의해 세뇌되면서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에게 다가온 것은 '평화'와 '통일'이었습니다. 어떤 정부나 교회, 그 누구도 그것을 위해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정말 한밤의 도적과 같이 임했습니다. 러시아나 미국, 심지어 동서독 사람들까지도 준비되어 있지 못했습니다. 반면, 용감한 동독의 그리스도인들은 투옥되면서까지 군복무를 거부하고, 그들의 직업을 포기하는 등 '평화'를 위한 대가를 치르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교회에서 '평화'를 위해 정치적인 핍박을 무릅쓰는 동안, 서독의 교회는 성직자들의 군대 복무를 격려하기 위해 그들의 급여를 재정적으로 후원하고 있었습니다.

    전쟁을 위해 젊은이들을 훈련시키는 국가와 기독교는 평화와 통일을 위해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비록 분단된 국가가 통일이 되더라도 제시할 것이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한 국가의 운명이 오직 그 국민의 힘과 노력에 놓여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분명 기만입니다. 그보다도 훨씬 강력한 영적인 주권이 역사를 이끌어가고 있음을 보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기독교는 전세계에 선교사를 보낼 수는 있더라도, 그곳의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데는 무능력할 것입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 서독의 기독교가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를 위한 부와 번영’ 뿐이었습니다. 그것은 실제 선거 포스터에 있던 문구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10년이 지난 후, 기민당(기독교 민주당) 소속의 독일 수상은 단지 '모두를 위한 부와 번영'이 아닌 자신만의 번영과 부를 추구하다 정치적 스캔들에 휘말리게 되었습니다. 당시 독일 사람들의 마음은 여전히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와 안드레아는 자본주의나 공산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삶의 길을 발견하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크리스천 공동체에서 형제로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위에 임하기를 열망하며 우리는 ‘세상 나라’를 버렸습니다. 전혀 새로운 모습의 사회가 자리잡은 공동체에서 형제의 삶을 살기 위해, 우리는 물질적 소유와 직업을 포기하고 부모와 친척을 떠났습니다. 사실 그것은 전혀 새롭기 보다는 아주 오래된 것이었습니다. 초대 교회 크리스천들이 그런 삶을 살았으니까요. 우리는 가지고 있는 모든 소유를 나눠 씁니다. 왜냐하면 사유가 곧 전쟁과 분단의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이전에 나의 적이었던 안드레아는 내가 나무를 가지고 어떻게 물건을 만들 수 있는지 실질적으로 나를 가르치고 훈련시켰습니다. 우리는 공장에서 어린이집(day care center)과 학교를 위한 목제 가구들 그리고 장애우들을 위한 제품들을 생산합니다. 우리가 만든 제품은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로 팔려 나갑니다. 우리 어린 아이들은 어린이집에서 매일 함께 어울려 놉니다. 만일 우리가 아이들에게, 불과 20년 전에 우리가(자신들의 부모가) 서로를 죽이기 위해 총을 겨누고 있었다고 말해 준다면, 아이들은 우리가 어리석고 잘못 되었다고 말할 것입니다. 성인들인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왜 아이들 같이 말하지 못할까요?

    * 이 글은 '복음과 상황' 2009년 8월호에 실렸던 기사입니다.

    Stefan and Andre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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